2026년 09월 3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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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역습②] 일본은 기업이 빚졌고 한국은 가계가 빚졌다…같은 부채, 다른 충격

아파트 단지와 철강 코일, 하락하는 소비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산업경제 일러스트

일본의 버블 붕괴가 한국에 던지는 경고는 단순히 “부채가 많으면 위험하다”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빚을 지고 있고, 자산가격이 조정될 때 누가 지출을 줄이느냐다.


1990년 전후 일본에서는 기업이 부채 확대의 중심에 있었다. 부동산과 주식가격이 오르면서 기업들은 상승한 토지가치를 담보로 다시 돈을 빌렸고, 그 자금으로 부동산과 설비투자를 확대했다. 버블이 꺼진 뒤에는 이 과정이 정확히 반대로 움직였다. 기업이 투자보다 빚 상환을 우선하면서 설비투자와 고용이 위축됐고, 은행의 부실채권까지 겹치면서 장기침체로 이어졌다.


현재 한국의 모습은 다르다. 기업부채도 높은 수준이지만 일본 버블 당시와 비교해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가계부채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2026년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2,019조8,00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25조9,000억원 증가했다. 가계대출만 1,891조3,000억원에 달한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최근 명목GDP 증가로 내려오는 흐름이지만, 부채 잔액 자체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


일본은 기업, 한국은 가계가 부채의 중심

구분일본 1990년 전후한국 최근핵심 의미
가계부채/GDP약 34%80%대 중후반한국 가계의 금리·주택가격 민감도가 훨씬 큼
기업부채대출 GDP 대비 111%, 채권 등 포함 시 더 높음GDP 대비 100%를 웃도는 높은 수준양국 모두 기업 레버리지 부담 존재
핵심 레버리지 주체기업가계+기업한국은 소비에 직접 충격 가능
주요 담보자산토지·상업용 부동산·주식주택·아파트한국은 가계 순자산과 직접 연결
1차 충격기업투자 감소가계소비 감소한국은 내수로 전달되는 경로가 짧음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일본의 1990년 가계부채는 GDP의 약 34%였다. 반면 일본 비금융기업은 1990년 대출만 GDP의 111%에 달했고, 주식을 제외한 채권성 조달까지 합치면 약 128% 수준이었다. 당시 일본의 부채 문제는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집중돼 있었다.


한국은 가계가 훨씬 깊게 들어와 있다. 최근 가계부채/GDP 비율이 낮아졌다고 해도 한국은행의 실제 잔액 통계에서는 2026년 1분기 1,993조1,000억원에서 2분기 2,019조8,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즉 비율 하락을 곧바로 본격적인 디레버리징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같은 100원의 부채라도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는 다르게 움직인다

일본 기업이 부채를 줄이면 가장 먼저 설비투자가 감소한다. 공장 증설을 미루고 기계 구입을 줄이며 신규 사업을 연기한다. 이후 고용과 임금이 영향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계소비가 줄어든다.

일본형 경로는 ‘기업부채 과다 → 부채상환 → 설비투자 감소 → 고용·임금 둔화 → 소비 감소’였다.


한국에서는 중간과정이 짧아질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보유한 가계는 매월 원금과 이자를 소득에서 지급한다. 금리가 오르거나 소득 증가가 둔화하면 줄일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인 항목은 소비다.

한국형 경로는 ‘가계부채 과다 → 원리금 부담 증가 → 가처분소득 감소 → 소비 감소 → 내수 둔화’가 될 수 있다.


집값 20% 하락이 가계 순자산에는 더 크게 작용한다

15억원짜리 주택을 자기자본 8억원과 대출 7억원으로 구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집값이 15억원에서 12억원으로 20% 떨어져도 대출원금은 거의 그대로 남는다. 순주택자산은 8억원에서 5억원으로 37.5% 감소한다. 자산가격은 20% 조정됐지만 가계 자기자본은 훨씬 큰 폭으로 줄어드는 레버리지 효과다.


이 상황에서 금리가 낮아진다고 가계가 즉시 소비를 늘릴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주택가격 회복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자동차 구입이나 여행, 내구재 소비보다 대출상환을 우선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에서 기업이 “투자보다 빚 상환”을 선택했다면 한국에서는 가계가 “소비보다 빚 상환”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위험은 붕괴보다 ‘오래 갚는 경제’일 수 있다

한국 부채 문제에서 반드시 집값의 대폭락을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집값이 30~40% 떨어지지 않더라도 높은 수준에서 5년, 10년 정체하고 그 기간 대출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가계는 상당 기간 소득의 일부를 원리금 상환에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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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경제는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소비 증가율 둔화, 자영업 매출 약화, 내수기업 매출 정체, 고용과 임금 상승 둔화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일본식 대차대조표 불황과 닮아질 수 있는 부분이다.


철강시장에는 건설·자동차·설비투자 둔화로 전달

가계부채 문제는 철강업계와 멀리 떨어진 금융시장 문제가 아니다. 소비와 주택거래가 둔화하면 가장 먼저 철근·형강 등 봉형강 수요가 영향을 받는다. 주택거래 부진은 신규 건설뿐 아니라 인테리어, 가전, 상업시설 투자에도 연결된다.


자동차 구매주기가 길어지면 자동차강판과 냉연도금재의 내수 성장도 제한된다. 소비가 약한 상황에서 기업이 설비투자를 미루면 열연·후판·구조용 강재와 산업기계용 철강재 수요도 둔화할 수 있다.


철강 유통업계에는 판매량보다 재고회전 속도가 문제가 된다. 수요가 정체되면 같은 재고를 가지고 있어도 보유기간이 길어지고, 높은 금리가 지속될 경우 재고 금융비용은 누적된다. 판매가격 몇 만원의 등락보다 재고일수, 차입금리, 매출채권 회수기간이 손익을 좌우하는 시장으로 바뀔 수 있다.


일본의 기업 대차대조표 불황, 한국에서는 가계에서 시작될 수 있다

한국이 이미 일본식 장기침체에 들어갔다고 볼 단계는 아니다. 전국적인 주택가격 붕괴도, 대규모 은행 부실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채의 위치는 분명히 다르다. 일본은 기업이 빚을 갚으면서 투자가 사라졌고, 한국에서는 가계가 빚을 갚기 시작할 경우 소비가 사라질 수 있다.


다음 회에서는 시선을 미국으로 옮긴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보다 전체 부채 규모가 더 크지만, 부채의 중심이 가계나 기업보다 정부에 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특히 미국 정부부채가 장기금리를 높은 수준에 묶어둘 경우 그 충격은 환율과 금리를 통해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자료: 한국은행, 일본은행, BIS, IMF..


[부채의 역습①] 일본은 왜 ‘제로금리’에도 살아나지 못했나…버블 뒤에 남은 빚

[부채의 역습②] 일본은 기업이 빚졌고 한국은 가계가 빚졌다

[부채의 역습③] 84조달러 빚진 미국은 왜 버티나…문제는 ‘정부부채’

[부채의 역습④] 美 10년물 5%가 한국 부동산을 흔드는 경로

[부채의 역습⑤] 소비가 사라지고 빚만 갚는 경제…한국도 일본의 길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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