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시대의 철강 경쟁은 차체 경량화를 위한 초고장력강과 구동모터 효율을 높이는 전기강판으로 이동하고 있다.
포스코의 신규 45만톤 자동차강판 라인과 6.5% 실리콘 전기강판 개발, 현대제철의 1.8GPa 핫스탬핑강은 미래 철강의 경쟁 기준이 생산량보다 강도·철손·고객 승인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자동차용 철강의 경쟁 기준도 바뀌고 있다. 차체는 배터리 무게를 버티면서도 더 가벼워져야 하고, 구동모터는 같은 전력으로 더 높은 출력을 내야 한다. 철강사 입장에서는 단순히 강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차체용 초고장력강은 성형성과 용접성, 충돌 안전성을 동시에 맞춰야 하고, 모터용 전기강판은 두께와 철손, 고속 회전 안정성까지 고객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
최근 움직임은 이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포스코는 9월 광양제철소에 연산 45만 metric ton 규모의 신규 자동차용 용융아연도금강판 생산라인(8CGL)을 착공했다. 투자비는 4,800억원으로 9월 23일 환율 달러당 1,357.3원을 적용하면 약 3억5,400만달러다. 회사는 대형 SUV·RV용 광폭 외판재와 전기로 소재를 활용한 저탄소 자동차강판까지 생산할 계획이다. 6월에는 현대자동차 등 10개 산학연 기관과 함께 실리콘 함량 6.5%의 광폭 전기강판과 고효율 구동모터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철강사가 미래 자동차의 차체와 모터를 동시에 겨냥하는 구조다.
고부가 자동차강판, 이제 ‘강도’보다 ‘부품 성능’이 기준
자동차용 초고장력강의 대표 지표는 인장강도다. 포스코의 GigaSteel은 980MPa 이상 초고강도강을 의미하고, 현대제철은 1.8GPa급 핫스탬핑강을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 현대제철에 따르면 1.8GPa 제품은 기존 1.5GPa급 핫스탬핑강보다 인장강도를 20% 높이면서 부품 제작 시 약 10%의 경량화가 가능하다. 센터필러처럼 충돌 시 탑승공간을 지켜야 하는 핵심 구조재에 적용된다.
그러나 강도가 높아질수록 철강사의 제조 난도는 오히려 커진다. 강판이 지나치게 단단하면 프레스 성형 과정에서 균열이나 스프링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용접부와 수소취성, 도금 품질까지 관리해야 한다. 실제 현대제철은 1.5GPa급 핫스탬핑강, 780MPa급 열연 초고장력강, 1.2GPa급 냉연 초고장력강 등을 대상으로 성형·용접·내구·수소취성까지 평가하고 있다. 제품 개발이 끝났다고 곧바로 자동차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부품 평가와 충돌시험, 고객 승인까지 통과해야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 항목 | 기술·투자 현황 | 시장 의미 | 출처 |
|---|---|---|---|
| 포스코 광양 8CGL | 연산 45만 metric ton, 투자 4,800억원(약 3억5,400만달러) | 광폭·프리미엄 자동차강판, 전기로 기반 저탄소 제품 대응 | POSCO |
| 현대제철 1.8GPa 핫스탬핑강 | 1.5GPa 대비 인장강도 +20%, 부품 경량화 약 10% | 전기차 배터리 중량 증가 속 차체 경량화·충돌안전 확보 | Hyundai Steel |
| 포스코 Hyper NO | 철손 3.5W/kg 이하, 두께 0.15mm급 생산 기술 | 구동모터 에너지 손실 저감과 고속·고효율화 | POSCO |
| 6.5% Si 전기강판 R&D | 2026년 6월 산학연 10개 기관 공동개발 착수 | 고효율 구동모터 적용을 위한 광폭·고규소 전기강판 상용화 경쟁 | POSCO·Hyundai Motor 등 |
주: 4,800억원의 달러 환산은 2026년 9월 23일 원·달러 1,357.3원을 적용해 반올림했다.
전기강판의 경쟁은 톤당 가격보다 ‘철손’에서 갈린다
전기강판은 일반 자동차강판과 평가 기준이 다르다. 전기차 구동모터에서는 전기에너지를 회전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철손이 낮을수록 효율이 높아진다. 포스코는 철손값 3.5W/kg 이하의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을 Hyper NO로 분류한다. 회사 자료에 따르면 기존 전기강판 대비 에너지 손실을 30% 이상 낮출 수 있고, 0.15mm급 초극박 제품을 생산해 철손을 더 줄이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두께를 얇게 만드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강판을 얇게 만들수록 압연과 형상 제어가 어려워지고 모터코어 적층·타발 과정에서도 품질 안정성이 중요해진다. 특히 고속 회전하는 구동모터는 철손뿐 아니라 강도와 내피로성, 가공성까지 동시에 요구한다. 같은 무방향성 전기강판이라도 범용 모터용과 고출력 전기차용의 부가가치가 크게 다른 이유다.
6월 시작된 6.5% 실리콘 광폭 전기강판 개발도 이 문제에서 출발한다. 실리콘 함량이 높아지면 철손을 낮출 수 있지만 재료가 취성화돼 얇고 넓은 강판으로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어려워진다. 이번 프로젝트가 소재 개발에서 끝나지 않고 모터코어 제작, 구동모터 제조, 실제 차량 효율 검증까지 이어지는 것도 고객 승인 단계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전기차가 무거워질수록 초고장력강의 역할은 커진다
전기차의 배터리팩은 내연기관차의 엔진·연료계보다 무겁다. 이 무게 증가를 그대로 차체에 더하면 주행거리와 에너지효율이 악화된다. 자동차업체가 차체 구조재를 줄이거나 얇게 만들려면 단위 면적당 더 높은 강도를 확보해야 한다. 알루미늄과 복합소재도 경량화 경쟁에 들어오지만 원가와 수리성, 대량생산성 측면에서 초고장력강은 여전히 중요한 선택지다.
그래서 철강사는 소재 판매에서 부품 설계 지원으로 영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대제철은 H-Solution을 통해 성형·용접·도장·충돌성능 등 자동차 고객의 부품 적용을 지원하고 있고, 포스코 역시 고강도 자동차강판과 전기강판을 미래 전략제품으로 묶어 기술개발과 판매를 연결하고 있다. 앞으로 자동차강판 경쟁은 톤당 몇 만원의 가격차보다 완성차가 원하는 차체 경량화율과 충돌성능, 생산공정 안정성을 얼마나 빨리 맞추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생산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 승인 속도
고부가 철강재에서는 설비 증설이 곧바로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동차강판은 완성차 업체별 품질 승인 기간이 길고, 전기강판도 모터 설계와 연동돼 고객사가 쉽게 소재를 바꾸기 어렵다. 신규 생산라인이 준공돼도 시제품 생산, 부품 가공, 성능시험, 장기 신뢰성 검증을 거쳐야 본격적인 공급이 가능하다.
반대로 한 번 인증을 받은 소재는 공급관계가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범용 열연이나 철근처럼 가격이 거래를 바로 좌우하는 시장과 가장 큰 차이다. 철강사에게는 연구개발비와 초기 인증비용이 높지만 고객과의 기술적 락인 효과가 강하고, 유통업체나 단순 트레이더가 중간에서 가격만으로 경쟁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다.
한국 철강업계의 승부처는 ‘고부가+저탄소’ 결합
앞으로 고부가 자동차강판은 성능만 높아서는 부족하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공급망 탄소배출을 줄이기 시작하면서 같은 강도와 품질을 제공하더라도 탄소배출이 낮은 소재가 유리해지고 있다. 포스코가 신규 8CGL에서 전기로 소재를 활용한 저탄소 자동차강판 생산을 계획하고, 현대제철이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로 자동차강판 품질을 검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앞선 회차에서 다룬 전기로·스크랩, 수소환원제철과 직접 연결된다. 저탄소 철원이 확보되면 그 다음 경쟁은 이를 고급 자동차강판과 전기강판 품질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범용재 시장에서 중국과 인도·ASEAN의 공급확대 압력을 받는 한국 철강업계 입장에서는 단순 생산량 확대보다 고객 인증이 필요한 고부가 제품 비중을 높이는 것이 구조적 대응이 될 수 있다.
다음 시장이 확인할 변수
첫째, 포스코 광양 8CGL이 계획대로 가동되고 광폭·저탄소 자동차강판 고객 승인을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는지다. 둘째, 6.5% 실리콘 전기강판 공동개발이 파일럿을 넘어 실제 양산성과 차량 효율 개선을 입증하는지가 중요하다. 셋째, 현대제철의 1.8GPa급을 넘어 더 높은 강도와 성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차세대 초고장력강 개발 속도도 봐야 한다. 넷째, 전기차 성장률이 둔화되거나 하이브리드 비중이 높아질 경우 전기강판·자동차강판 수요구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저탄소 강재 프리미엄을 완성차 업체가 실제 구매가격에 얼마나 반영할지가 고부가 전략의 수익성을 결정한다.
주요 출처: POSCO, POSCO Group Newsroom, Hyundai Steel 제품·R&D 자료,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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