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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딩 비지니스 ⑪] 물건은 한국을 거치지 않는다 — 삼국간 거래에서 트레이더가 파는 것은 ‘연결’이다

[트레이딩 비지니스 ⑪] 물건은 한국을 거치지 않는다 — 삼국간 거래에서 트레이더가 파는 것은 ‘연결’이다

삼국간 거래는 겉으로 보면 단순하다. A국 제철소에서 산 철강재를 B국 바이어에게 팔고, 물건은 한국을 거치지 않은 채 A국 항구에서 B국 항구로 이동한다. 한국에 있는 트레이더는 계약서와 돈, 서류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거래는 정반대다. 물건을 직접 보유하지 않는 대신 트레이더는 공급선의 이행, 바이어의 결제, 선적 일정, 운임, 서류, 통상규제와 클레임을 한꺼번에 떠안는다. 삼국간 거래에서 트레이더가 파는 것은 철강재만이 아니라 서로 만나지 못했던 시장을 연결하는 구조 자체다.


이 거래가 성립하려면 두 개의 계약이 거의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트레이더는 공급자와 매입계약을 체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바이어와 매출계약을 체결한다. 물량·규격·품질·포장·납기·검사·선적조건·결제조건이 앞뒤 계약에서 서로 어긋나면 작은 차이가 그대로 트레이더의 리스크가 된다. 공급자에게는 허용된 규격 공차가 바이어 계약에는 허용되지 않거나, 공급자 계약은 분할 선적이 가능한데 바이어 계약은 일괄 선적만 허용하는 식의 불일치가 대표적이다.


삼국간 거래의 핵심은 ‘가격차’가 아니라 계약의 대칭성이다

삼국간 거래의 첫 유혹은 스프레드다. 예를 들어 공급자로부터 열연을 FOB 500달러/톤에 확보하고, 바이어에게 CFR 555달러/톤에 판매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해상운임이 35달러/톤이고 금융·보험·서류·검사 등 기타 비용을 7달러/톤으로 잡으면 명목상 남는 금액은 13달러/톤이다. 5,000톤이면 6만5,000달러다. 숫자만 보면 충분한 마진처럼 보일 수 있다.


항목가상 예시트레이더가 확인할 변수
공급자 매입가격FOB 500달러/톤규격·중량공차·선적 가능일
해상운임35달러/톤선복·Laycan·체선료·유가
금융·보험·검사·서류비7달러/톤결제기간·은행비용·검사 조건
바이어 판매가격CFR 555달러/톤도착항·품질조건·클레임 조항
명목 마진13달러/톤환율·납기·서류·클레임 비용 반영 전
거래 물량5,000톤분할선적·최종 선적중량
명목 거래마진65,000달러실제 확정이익이 아닌 설명용 가정


그러나 실제 손익은 스프레드보다 두 계약의 비대칭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공급자가 열흘 늦게 선적했는데 바이어에게는 지연배상 조항이 있다면 그 비용은 트레이더가 부담할 수 있다. 공급계약에서는 중량공차 ±10%를 허용하는데 판매계약은 정확한 주문량을 요구한다면 잉여 또는 부족 물량이 발생한다. 포장방식이나 코일 내경, 도유 조건, 검사기관이 다르면 선적 직전에 계약서를 다시 뒤집는 일이 생긴다.


베테랑 트레이더가 두 계약을 나란히 놓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입계약의 권리와 의무가 매출계약으로 가능한 한 그대로 넘어가야 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Back-to-Back 구조의 본질이다. 단순히 계약서 두 장을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 계약에서 발생한 위험을 다른 쪽 계약에서 흡수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맞추는 작업이다.


물건은 제3국으로 가지만 책임은 트레이더에게 모인다

삼국간 거래에서 물류는 공급자에서 바이어로 직행할 수 있다. 하지만 책임까지 직행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선박을 잡는지, 누가 해상운임을 부담하는지, 선적항 검사와 도착항 클레임을 누가 책임지는지에 따라 트레이더의 포지션이 달라진다. FOB 매입 후 CFR 판매라면 트레이더는 사실상 선박과 운임을 하나의 상품처럼 다시 매매하는 셈이다. 선박 예약이 늦어지거나 Laycan을 놓치면 철강재 가격차로 확보한 마진이 운임과 체선료에서 사라질 수 있다.


서류는 더 민감하다. 상업송장, 포장명세서, 선하증권(B/L), 원산지증명서, 검사증명서, 밀 테스트 증명서가 계약조건과 신용장 조건에 맞아야 한다. 공급자가 만든 서류를 그대로 바이어에게 전달하면 거래 상대방 정보가 노출될 수 있고, 반대로 정보를 가리기 위해 서류를 임의로 수정하면 은행·세관·원산지 규정과 충돌할 수 있다. 다음 회차에서 다룰 Switch B/L은 이런 정보보호 필요에서 등장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조건과 법적 한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원산지를 바꾸거나 무역구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돈의 시차가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물류보다 더 자주 트레이더를 압박하는 것은 결제시점의 불일치다. 공급자는 선적 후 즉시 결제를 요구하는데 바이어는 60일 또는 90일 Usance를 요구할 수 있다. 물건은 이미 바이어 쪽으로 가고 있지만 트레이더의 현금은 공급자에게 먼저 나간다. 이 기간에는 은행한도와 금융비용, 바이어 신용위험이 동시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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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공급자에게 At Sight로 지급하고 바이어에게 90일 조건을 허용했다면, 명목 마진 13달러/톤 안에 90일 금융비용과 신용위험 프리미엄이 들어가야 한다. 환율이 서로 다른 통화로 움직이면 가격 마진과 환차손익이 뒤섞인다. 따라서 삼국간 거래의 손익표에는 매입가격과 판매가격만이 아니라 결제일, 통화, 은행수수료, 할인료, 환헤지 비용을 별도 항목으로 놓아야 한다.


공급선과 판매처를 보호하는 것도 상품이다

삼국간 거래에서 가장 예민한 자산은 정보다. 공급자가 최종 바이어를 알게 되거나 바이어가 원 공급자를 직접 접촉하면 다음 거래에서 트레이더가 배제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거래는 에이전트 계약보다 트레이더가 매입자와 판매자 역할을 각각 맡는 Principal 구조를 선호한다. 그러나 상대방 정보를 무조건 감추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은행의 KYC, 제재 심사, 수입국 통관, 최종사용자 확인이 필요한 거래에서는 당사자 정보가 금융기관과 당국에 적법하게 제공돼야 한다.


결국 보호해야 할 것은 ‘비밀’ 그 자체가 아니라 트레이더가 만들어 낸 거래구조의 가치다. 가격 발견, 공급선 신뢰성 검증, 물류조합, 금융한도, 통상규제 확인, 클레임 처리 능력이 없다면 공급자와 바이어를 소개했다는 사실만으로 장기 마진을 지키기 어렵다. 반대로 이 기능을 갖춘 트레이더는 거래 상대방이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어도 계속 필요하다.


삼국간 거래에서 반드시 맞춰야 할 다섯 가지

첫째, 제품 조건이다. 강종·규격·코일중량·공차·포장·검사 기준을 앞뒤 계약에서 최대한 동일하게 맞춘다. 판매계약에서 더 엄격한 조건을 약속했다면 공급자에게 그 조건을 다시 반영해야 한다.

둘째, 납기와 물류다. 생산 완료일과 선적 가능일, Laycan, 부분선적·환적 허용 여부, 체선료 부담 주체를 확인한다. 삼국간 거래는 한쪽 일정이 틀어지면 두 계약이 동시에 흔들린다.

셋째, 결제조건이다. 공급자 지급일과 바이어 회수일의 차이를 계산하고, 필요한 운전자금과 은행한도를 확보한다. 바이어가 높은 가격을 제시해도 결제위험이 크면 좋은 거래가 아니다.

넷째, 서류와 통상규정이다. B/L, 원산지, 검사증명, 수입국 인증, AD·CVD·세이프가드, 제재·수출통제 여부를 계약 전에 확인한다. 특히 원산지와 선적국, 판매국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클레임의 전달 경로다. 바이어 클레임을 공급자에게 그대로 넘길 수 있는지, 접수기한과 증빙, 검사기관, 손해배상 한도가 앞뒤 계약에서 연결되는지 확인한다. 이 연결이 끊기면 트레이더가 중간에서 손실을 전부 떠안을 수 있다.


좋은 삼국간 거래는 ‘보이지 않는 재고’가 적다

삼국간 거래의 매력은 자산을 직접 쌓아 두지 않고 시장과 시장을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물리적 재고가 없다고 위험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계약상 미스매치, 미수금, 선복, 환율, 품질 클레임은 모두 보이지 않는 재고처럼 트레이더의 장부에 남는다.


따라서 거래를 평가할 때는 “몇 달러 남는가”보다 “어떤 위험을 내가 보유하게 되는가”를 먼저 묻는 것이 맞다. 앞뒤 계약이 대칭적이고, 현금흐름이 감당 가능하며, 서류와 통상조건이 합법적으로 연결되고, 공급자와 바이어 모두 계약을 이행할 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가격차가 마진이 된다. 삼국간 거래에서 트레이더의 진짜 상품은 철강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장의 시간·정보·신용·물류를 하나의 계약으로 묶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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