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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계절 ㉝ — 99만원을 지키는 하루

강철의 계절 ㉝ — 99만원을 지키는 하루

이 작품은 실제 철강시장 자료를 모티프로 창작한 픽션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일부 기업·사건은 허구이며, 실제 기업·단체·사건과 관련이 없다. 실제 기업명은 공개된 시장정보와 가격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범위에서만 사용했다.


부제: 후판의 가격은 멈췄지만 납기와 품질은 매시간 움직였다

2026년 9월 8일 화요일 | 당진 후판 가공장·품질회의실·프로젝트 현장


가격은 그대로인데 납기가 흔들렸다

화요일 오전 8시 5분, 동명플레이트 가공장에 프로젝트용 후판 한 묶음이 도착했지만 바로 절단기로 들어가지 못했다. 주문서와 재고표는 맞았으나 고객 승인 규격이 한 단계 달랐다. 국산 후판 유통가격은 톤당 99만원, 수입재는 96만원으로 전주와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3만원의 차이가 아니라 목요일 오전까지 납품 가능한지 여부였다.


품질팀장 오세진이 성적서를 들고 말했다. “이 규격은 대체 승인 없이는 출하 못 합니다.”

영업차장 최유나가 바로 반박했다. “현장에서는 목요일부터 조립 들어갑니다. 하루 미뤄지면 우리 계약이 흔들립니다.”

구매팀 김동석이 끼어들었다. “수입재 96만원 물량이 하나 있습니다. 규격만 맞으면 그쪽으로 돌리죠.”


세진이 고개를 저었다. “규격만 같은 게 아닙니다. 품질 승인 이력이 있어야 합니다.”

공장장 장태현은 세 사람을 번갈아 봤다. 후판은 다른 판재류보다 가격이 견조했다. 시중 공급이 많지 않았고 전력설비와 인프라 프로젝트 물량이 일부 받쳐주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제한된 공급 때문에 특정 규격 하나가 비면 전체 일정이 흔들렸다.


창고 세 장의 우선순위

오전 10시 태현은 직접 창고로 내려갔다. 필요한 규격은 세 장뿐이었다. 그중 두 장은 다음 주 출하 예정 고객이 이미 예약해 둔 상태였다.

창고반장 이명수는 말했다. “예약을 풀면 오늘 프로젝트는 살릴 수 있습니다. 대신 다음 주 물량이 비게 됩니다.”


유나가 말했다. “다음 주 고객에게 사전 양해를 구하고 예정 입고분으로 채우면 됩니다.”

동석이 노트북을 열었다. “문제는 예정 입고가 확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4분기 보수 일정 얘기도 있고, 시중 물량도 많지 않습니다.”


태현이 물었다. “일반 유통재는?”

“있습니다. 하지만 두께가 다릅니다.”

세진이 덧붙였다. “절단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승인 규격이 다릅니다.”


태현은 오래 고민했다. 가격을 낮춰 물량을 사오면 해결될 문제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승인과 시간의 문제였다. 그는 다음 주 고객에게 먼저 연락해 납기를 이틀 조정할 수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대가로 운송비 일부를 회사가 부담하고, 신규 입고분을 최우선 배정한다는 조건이었다.


유나는 한숨을 쉬었다. “마진은 줄겠네요.”

“마진보다 약속의 순서를 바꾸는 겁니다.” 태현이 말했다.


전환점은 현장 전화에서 왔다

오후 1시 40분, 프로젝트 현장소장이 전화를 걸었다. 예상과 달리 전체 물량이 목요일 오전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1차 가공분만 먼저 들어오면 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전량이 아니라 절반이면 작업 시작 가능합니까?” 태현이 물었다.

“가능합니다. 나머지는 금요일 오전까지면 됩니다.”


유나가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예약 두 장을 다 풀 필요가 없습니다.”

세진이 바로 계산했다. “승인 완료 재고 한 장과 기존 보유재 일부를 조합하면 1차 물량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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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석이 말했다. “수입재 96만원짜리를 급히 살 필요도 없겠네요.”


태현은 그 순간 결정했다. 가격 때문에 불안해서 추가 재고를 사들이지 않고, 현재 보유재고의 승인 상태와 고객 공정 순서를 다시 맞추기로 했다. 그는 프로젝트팀에 ‘총재고’ 대신 ‘승인 완료·즉시 출하 가능 재고’라는 새 지표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99만원을 지키는 방법이 더 사는 게 아니라, 가진 물건을 제대로 분류하는 거군요.” 유나가 말했다.

“맞아. 가격은 같아도 쓸 수 없는 후판은 오늘 우리에게 재고가 아니야.”


가격을 지키기 위해 비용을 썼다

저녁 6시, 첫 절단 작업이 시작됐다. 회사는 야간 가공비와 추가 배차비를 부담했다. 다음 주 고객에게는 납기 변경을 사전에 통보했고 운송비 일부를 회사가 떠안았다. 대신 프로젝트 계약단가는 낮추지 않았다. 국산 99만원, 수입재 96만원이라는 시세는 그대로였지만 회사의 실제 비용은 올라갔다.


재무팀에서 ‘왜 가격을 지킨 거래가 비용을 더 쓰느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태현은 임원 보고에서 이렇게 답했다. “후판은 오늘 가격을 깎아 파는 것보다 납기와 승인 실패로 고객을 잃는 비용이 더 큽니다. 이번 주 시장은 공급이 제한돼 있어 잘못된 대체가 더 위험합니다.”


세진은 승인서류를 묶으며 말했다. “이번에 한 번 예외를 만들었으면 다음에도 같은 요구가 왔을 겁니다.”

유나는 웃었다. “영업은 늘 예외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품질팀이 있는 거죠.” 세진이 답했다.


태현은 둘의 말을 들으며 창밖의 절단 불꽃을 바라봤다. 가격은 일주일 동안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가격을 지키기 위한 회사의 판단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다. 그날의 즉각적인 비용은 야간작업과 운송비였다. 대신 고객의 공정은 멈추지 않았고 다음 프로젝트의 우선협상 가능성도 남았다. 다음 날 냉연도금팀에서는 제조사 인상과 수입 HGI 사이에서 전혀 다른 싸움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한 장의 승인서가 만든 두 개의 손익

오후 4시 반, 태현은 품질팀과 영업팀을 다시 불렀다. 문제의 후판 한 장을 두고 두 부서의 손익계산이 완전히 달랐다. 영업팀은 납기 지연으로 계약을 잃을 경우를 계산했고, 품질팀은 승인 없는 대체재 출하 후 클레임이 발생할 경우를 계산했다. 두 계산에는 공통으로 들어가는 숫자가 거의 없었다. 태현은 화이트보드에 ‘매출 손실’과 ‘클레임 손실’을 나란히 적었다.


“우리는 왜 늘 자기 부서에서 보이는 손실만 크게 봅니까?” 태현이 물었다.

유나가 말했다. “영업은 고객이 떠나는 걸 먼저 보니까요.”

세진이 답했다. “품질은 한 번 잘못 나가면 다시 못 주워오는 걸 보니까요.”

동석이 말했다. “구매는 다음 달에 물건이 없을까 봐 겁납니다.”

태현은 세 사람을 바라봤다. “그래서 세 숫자를 한 장에 올립시다. 가격, 승인, 납기. 하나라도 비면 계약 확정 금지.”


그날부터 프로젝트 후판은 일반 유통재와 다른 결재선을 탔다. 영업은 계약 전에 품질 승인 상태를 확인해야 했고 구매는 ‘입항 예정’ 물량을 재고로 잡을 수 없었다. 창고는 승인 완료 재고를 별도 구역에 두기로 했다. 이 조치는 당장 매출을 늘려주지는 않았지만, 어떤 재고가 실제로 팔 수 있는 재고인지 회사 전체가 같은 언어로 보기 시작했다.


오후 6시 고객사에서 추가 요청이 들어왔다. 첫 납품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다음 달 같은 규격을 더 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유나는 반색했지만 태현은 바로 견적을 내지 않았다. “먼저 공급 가능 날짜부터 확인합시다.”

유나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영업보다 납기팀이 먼저네요.”

“이 시장에서는 그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야간 작업 중 절단기에서 예상보다 많은 자투리 손실이 발생했다. 생산팀은 비용을 이유로 규격 조합을 다시 바꾸자고 했지만 세진은 고객 승인 범위를 벗어난다며 거절했다. 태현은 추가 손실을 감수했다. 그날 회사가 부담한 비용은 운송비와 야간작업비뿐 아니라 일부 소재 손실까지 늘었다. 그러나 반대로 다음 주 고객 물량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고가 재고를 추가로 사들이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밤 10시, 첫차 배차가 확정됐다는 메시지가 왔다. 태현은 회의실 불을 끄며 생각했다. 후판이 99만원을 유지한 이유는 단순히 공급이 적어서만이 아니었다. 필요한 규격, 승인된 품질, 확정된 납기가 한꺼번에 맞아떨어지는 물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가격은 보합이었지만 거래의 난이도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었다. 그 난이도를 비용으로 감당할 것인지, 가격을 깎아 책임을 피할 것인지가 회사의 선택이었다.


그날의 가격

품목가격주간 변동
국산 후판99만원/톤전주와 동일
수입 후판96만원/톤전주와 동일

※ 가격과 시장상황은 선택한 K스틸 2026-09-04 원자료 범위에서 사용했으며, 소설 속 기업·인물·거래조건·사내 판단은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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