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6일 (목)

[철의 산책] 부도는 적자보다 먼저 현금에서 시작된다

최근 철강업계의 부도와 기업회생 위험은 매출 감소보다 현금흐름, 장기재고, 매출채권과 늦은 구조조정에서 시작된다. 

시장의 경고를 듣고 재고를 줄이며 숫자로 경영하고, 위험이 작을 때 행동하며 새로운 수요로 전환하는 다섯 가지 생존 원칙을 제시한다.


 

최근 철강업계에서 들려오는 부도와 기업회생 소식은 남의 회사 이야기로만 넘길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거래해 온 업체가 결제를 미루고, 어음 만기를 연장하며, 어느 날 갑자기 출고를 중단하는 일이 생기면 그 충격은 한 회사에서 끝나지 않는다. 매출채권을 보유한 철강사와 제강사, 재압연사, 유통업체, 가공업체, 운송업체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린다.


철강업체가 어려워지는 이유를 단순히 경기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물론 시장 환경은 혹독하다. 2025년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세아제강 등 주요 철강사 매출 합계는 약 70조9,806억 원으로 전년보다 3% 감소했고, 국내 철강산업은 3년 연속 외형이 축소됐다. 건설과 자동차 등 수요산업 부진, 중국발 공급과잉, 미국과 유럽연합의 무역장벽이 동시에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26년 7월부터 철강 무관세 수입 물량을 기존 3,382만 톤에서 1,835만 톤으로 약 46% 줄이고, 쿼터 초과 물량에는 50%의 관세를 적용했다. 이제 철강업체는 내수 부진뿐 아니라 수출 물량과 통관 비용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는 처지다.



주요 경영환경최근 상황철강업체에 미치는 영향
주요 철강사 매출 합계2025년 70조9,806억 원전년 대비 3% 감소
산업 외형3년 연속 축소판매량·판가 동반 압박
EU 무관세 쿼터3,382만 톤→1,835만 톤약 46% 축소
EU 쿼터 초과 관세50%수출 채산성·계약 위험 확대
포스코홀딩스 구조개편누적 73건현금 1조8,000억 원 창출

출처: 시장, 금융감독원 공시 기반 보도, 산업통상부, 포스코홀딩스


그러나 같은 불황에서도 살아남는 회사가 있고 무너지는 회사가 있다. 차이는 매출 규모보다 경영의 기본에서 나타난다. 잘나갈 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시장이 얼어붙으면 그동안 감춰졌던 약점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다.


첫째, 박이후구를 버리고 시장의 말을 들어야 한다


‘박이후구(薄耳厚口)’는 귀는 얇아지고 입은 두꺼워져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말만 늘어놓는 태도다.


사업에서도 가장 위험한 순간은 대표가 시장보다 자신의 경험을 더 믿기 시작할 때다. “철강 가격은 곧 오른다”, “이 거래처는 절대 부도가 나지 않는다”, “재고는 언젠가 팔린다”는 확신이 회사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


영업사원은 주문 감소를 먼저 알고, 경리 담당자는 결제 지연을 먼저 발견하며, 창고 담당자는 움직이지 않는 재고를 가장 정확하게 안다. 고객의 구매량이 줄고 결제일이 늦어지며, 직원들이 반복해서 위험 신호를 보고한다면 대표는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기 전에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좋은 경영자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쁜 소식을 빨리 듣는 사람이다. 부도는 시장의 경고를 듣지 않을 때 가까워진다.


둘째, 망집을 버리고 재고와 외형에 대한 고집을 내려놓아야 한다


철강 유통업은 재고를 보유해야 영업할 수 있다. 그러나 팔리지 않는 재고는 자산이 아니라 현금을 묶어두는 쇳덩이다.


가격 상승기에 매입한 열연강판, 후판, 철근, 형강이 시황 하락으로 장기간 창고에 쌓이면 장부상 자산은 남아 있어도 회사 통장에서는 현금이 사라진다. 여기에 창고료, 금융비용, 녹 발생, 절단 손실, 가격 하락에 따른 평가손실까지 더해진다.


매출액을 유지하기 위해 저마진 판매를 늘리는 것도 위험하다. 매출 100억 원에 이익이 거의 없는 회사보다 매출 70억 원이라도 현금이 남는 회사가 오래 버틴다.


철강업체는 품목별 재고회전일수와 실질 마진을 따져야 한다. 일정 기간 움직이지 않은 장기재고는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정리해야 한다. 팔리지 않는 재고를 높은 장부가격으로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은 자산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손실 인식을 미루는 일이다.


망집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손가락 하나를 놓고 몸 전체를 지키는 결단이다.


셋째, 중언부언하지 말고 숫자로 경영해야 한다


경영이 어려워질수록 회의는 길어진다.

“다음 달에는 좋아질 것이다.”

“큰 주문 하나만 들어오면 해결된다.”

“거래처가 곧 결제한다고 했다.”


이런 말은 위로가 될 수는 있어도 자금계획이 될 수는 없다. 철강업체가 매일 확인해야 할 것은 막연한 전망이 아니라 현금 잔액, 매출채권 만기, 재고회전일수, 차입금 만기와 이자비용이다.


손익계산서에 흑자가 찍혀도 매출대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회사는 쓰러질 수 있다. 외상으로 10억 원을 판매하면 장부에는 매출이 생기지만, 결제 전까지는 현금이 아니다. 거래처가 부도나면 매출은 사라지고 매입대금과 금융비용만 남는다.


특히 철강 유통업체는 월별 손익보다 13주 단위 자금수지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들어올 돈과 나갈 돈을 주 단위로 예상하고, 부족 시점이 확인되면 미리 재고와 채권을 정리해야 한다.


경영자는 “얼마를 팔았는가”보다 “얼마가 남았고 언제 현금으로 들어오는가”를 물어야 한다.


넷째, 백우무행을 버리고 위험이 작을 때 움직여야 한다


백 가지 걱정을 하면서도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 ‘백우무행(百憂無行)’은 불황기 경영에서 가장 치명적인 태도다.


결제가 며칠씩 늦어지는 거래처가 있다면 즉시 신용한도를 줄여야 한다. 적자가 반복되는 품목이 있다면 판매량을 늘리기 전에 거래를 중단할지 검토해야 한다. 가동률이 떨어졌다면 주문이 회복되기만 기다리지 말고 설비, 인력, 임차공간과 물류계약을 다시 살펴야 한다.


구조조정은 부도 직전에 하는 최후의 조치가 아니다. 현금이 남아 있을 때 선택권을 확보하기 위한 선제적 경영이다.


포스코홀딩스도 2025년까지 비핵심 자산과 저수익 사업을 포함한 구조개편 73건을 추진해 1조8,000억 원의 현금을 창출했다고 밝혔다. 대기업도 불황기에는 자산을 정리하고 현금을 확보한다. 중소 철강업체라면 더욱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


문제가 커진 뒤 움직이면 매각할 자산의 가격도 떨어지고, 금융기관과 거래처의 신뢰도 이미 약해진다. 손실을 인정하는 속도가 느릴수록 부도에 가까워진다.


다섯째, 고안을 버리고 새로운 수요와 거래방식을 찾아야 한다


‘고안(故安)’은 과거의 방식에 기대어 안주하는 마음이다.


예전에 잘 팔렸던 품목, 오랫동안 거래해 온 고객, 익숙한 영업 방식만 붙들고 있으면 시장 변화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건설용 철강재 수요가 줄어드는데도 과거의 판매량 회복만 기다리거나, 전화와 인맥에만 의존하면서 디지털 견적·재고관리·온라인 판매를 외면해서는 생존하기 어렵다.


2026년 철강산업은 구조적 저성장과 보호무역, 중국발 공급과잉이 동시에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 전문가들도 비효율 자산 정리와 수요자 중심의 고부가가치 사업 전환을 핵심 생존 과제로 보고 있다.


앞으로 살아남는 철강업체는 모든 제품을 취급하는 회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특정 규격을 빠르게 공급하거나, 절단·가공·물류를 결합하거나, 소량 다품종 주문에 대응하거나, 반도체·데이터센터·전력망·조선·방산 등 성장 수요에 맞춘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가 경쟁력을 갖게 된다.


철을 파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고객이 재고를 줄이고 납기를 맞추며 가공비를 절감하도록 도와주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


매출보다 현금, 외형보다 생존이다


철강업체의 부도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반드시 징후가 있다. 재고가 늘어나고, 매출채권 회수가 늦어지며, 금융비용이 커지고, 거래처 한 곳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대표가 듣기 싫은 이야기를 피하고 구조조정을 미룰 때 위험은 더욱 커진다.


망하지 않고 사업을 잘하는 비결은 특별한 묘책에 있지 않다.


시장의 말을 듣고, 고집을 내려놓으며, 숫자로 판단하고, 문제가 작을 때 행동하며, 새로운 수요를 찾아 움직이는 것이다.

호황기에는 매출이 회사를 크게 만든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현금과 절제가 회사를 살린다.


철강은 뜨거울 때 모양을 바꾸어야 한다. 완전히 식어버린 뒤에는 아무리 큰 망치를 내려쳐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아직 현금이 있고 거래처의 신뢰가 남아 있을 때 바꾸어야 한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성공은 가장 많은 철을 파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시장에 남아 다음 기회를 맞이하는 것이다.




철강업체 생존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


구분경계할 태도실무 경영 원칙
1박이후구직원·고객·거래처의 위험 신호를 먼저 듣는다
2망집장기재고와 저마진 거래를 과감히 정리한다
3중언부언매출보다 현금흐름과 채권 회수일을 관리한다
4백우무행결제 지연·적자 품목·고정비에 즉시 대응한다
5고안성장 수요와 가공·물류·디지털 영업으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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