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5일 (수)

철의 만기


모든 인물과 기업, 지역, 거래금액은 허구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일치한다면 우연에 불과하다.


서해안 끝자락의 해원철강산업단지는 새벽부터 소음으로 깨어나는 곳이었다. 두꺼운 후판이 절단기 위에 올라가면 붉은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고, 대형 트레일러들은 아직 해가 뜨기도 전에 제철소와 가공공장 사이를 오갔다.

철강 유통업자들에게 그곳은 시장이자 전쟁터였다. 톤당 1만원의 차이로 계약이 뒤집혔고, 결제일 하루가 늦어졌다는 이유로 수십 년 거래가 끊기기도 했다.


그런 해원시장에 어느 월요일 아침, 짧은 소문 하나가 퍼졌다.

“청람철강 어음이 막혔다더라.”

처음에는 모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철강업계에서 어음 결제가 하루 이틀 늦어지는 일은 흔했다. 은행 전산 문제일 수도 있었고, 거래처의 입금이 늦어진 탓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점심 무렵 또 다른 소식이 들어왔다.

청람철강이 발행한 전자어음 17억원어치가 지급되지 않았고, 오후에 만기가 돌아오는 어음도 결제가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다음 날까지 돌아오는 어음은 30억원이 넘었다.


사흘 뒤 청람철강은 사실상 영업을 중단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청람철강의 최대 공급처였던 대한플레이트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두 회사가 동시에 흔들리자 해원철강산업단지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동안 값싼 후판을 공급받았던 유통업체들은 입을 닫았고, 청람철강의 어음을 보유한 업체들은 은행과 법무법인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단순한 연쇄 부도가 아니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1. 무너진 회사에서 나온 새 회사


철강 전문 신용조사업체에서 일하는 서도현은 청람철강의 법인등기부부터 살펴봤다.

청람철강의 대표는 한서진이었다. 그는 과거 태원종합철강에서 영업관리부장으로 근무했던 인물이었다.

태원종합철강은 한때 수도권 후판 유통시장에서 이름을 날린 회사였다. 그러나 무리한 외형 확대와 과도한 어음 발행으로 12년 전 부도 처리됐다. 당시 태원종합철강의 대표는 최영철이었다.


이상한 점은 청람철강의 설립 시기였다.

회사가 만들어진 때는 태원종합철강의 경영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 해와 거의 겹쳤다. 청람철강은 처음에는 소형 철강재 판매업체로 등록됐지만, 태원종합철강이 부도난 직후 상호를 바꾸고 후판 유통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옛 태원종합철강의 거래처 일부와 영업직원도 청람철강으로 이동했다. 창고 위치와 운송업체, 심지어 거래은행까지 상당 부분 겹쳤다.

서도현은 낡은 거래처 명단을 한 장씩 넘겼다.

“회사는 새로 만들었지만 장사는 그대로 이어받았군.”


청람철강은 빠르게 성장했다. 설립 초기 매출은 70억원에 불과했지만, 몇 년 뒤 300억원을 넘어섰고 최근 사업연도에는 580억원대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이익은 거의 없었다.


매출이 수백억원 증가하는 동안 자본금은 그대로였고, 차입금과 매입채무만 불어났다. 최근 재무자료에 표시된 부채비율은 5,000%를 넘었다. 사실상 자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더 이상했던 것은 미지급금이었다.


청람철강이 철강업체와 유통업체에 지급하지 못한 물품대금은 약 130억원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장부상 재고는 2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팔지 않은 철강재도 없고, 은행 잔액도 없다면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갔는가.



2. 세 사람


청람철강의 실질적인 영업을 맡았던 사람은 한서진의 동업자 윤태석이었다.


윤태석은 대한플레이트의 대표 박준호, 세광가공의 대표 이민재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세 사람은 나이도 같았고, 20대 후반부터 철강업계에서 함께 일했다.

박준호가 운영하는 대한플레이트는 대형 건설장비 제조업체에 후판 부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였다. 연간 매출은 약 720억원이었다.

박준호는 증권사 기업금융부 출신이었다. 철강 영업 경험은 많지 않았지만 은행대출, 지급보증, 수입신용장, 매출채권 담보대출 구조에는 누구보다 밝았다.


이민재가 운영하는 세광가공은 후판 절단과 모형 절단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 대한플레이트가 원판을 공급하면 세광가공이 절단해 건설기계 부품업체나 조선기자재업체에 납품했다.


표면적으로 세 회사의 역할은 분명했다.

대한플레이트가 후판을 대량으로 매입하고, 청람철강이 유통과 판매를 담당하며, 세광가공이 절단과 가공을 맡았다.

문제는 세 회사 사이의 거래가격과 결제조건이었다.



3. 비싸게 사고, 싸게 팔았다


후판의 정상적인 시장가격이 kg당 920원이라고 가정하면 일반 유통업체는 910~930원 사이에서 제품을 매입했다. 물류비와 금융비용을 더한 뒤 kg당 10~30원의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것이 통상적인 구조였다.


그러나 청람철강은 반대로 움직였다.

청람철강은 대한플레이트나 다른 공급업체로부터 후판을 kg당 940~950원에 매입했다. 시중가격보다 kg당 20~30원 높은 가격이었다.

대신 결제는 현금이 아니라 만기 90일 또는 120일짜리 어음으로 했다.


청람철강은 그렇게 매입한 후판을 다른 유통업체에 kg당 890~900원에 판매했다. 시중가격보다 kg당 20~30원 낮았다.

다만 조건이 하나 붙었다.

“당일 현금 결제.”


구매업체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후판 1,000톤을 매입하면 시중가격보다 2,000만~3,000만원 싸게 살 수 있었다.

청람철강은 제품 1,000톤을 팔 때마다 최소 수천만원의 손실을 봤다. 매입가격과 판매가격 차이만 놓고 보면 거래를 계속할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였다.

그러나 청람철강은 손익보다 현금을 먼저 봤다.


90일 뒤 지급해야 할 어음으로 제품을 매입하고, 그 제품을 즉시 현금으로 판매하면 당장 수억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청람철강은 그 돈으로 한 달 전에 발행한 어음을 막았다. 또 다른 거래에서 들어온 현금은 수입대금 결제나 은행이자 상환에 사용했다.

새로운 철강재를 매입할 때는 다시 어음을 발행했다.


어음으로 물건을 사고, 현금으로 싸게 판 뒤, 그 현금으로 과거 어음을 갚는 방식이었다.

장부에는 계속 매출이 기록됐다. 제품이 실제로 입고되고 출고됐기 때문에 세금계산서도 정상적으로 발행됐다. 운송장과 계근표도 존재했다.


그러나 거래의 목적은 이익이 아니었다.

현금을 확보해 돌아오는 만기를 넘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4. 어음에 신용을 입히는 방법


처음부터 청람철강의 어음이 시장에서 잘 유통된 것은 아니었다.

자본이 적고 부채가 많은 중소 유통업체가 발행한 어음은 할인도 어려웠다. 그래서 대한플레이트와 세광가공이 등장했다.


대한플레이트는 대형 수요업체의 1차 협력사라는 신용이 있었다. 세광가공 역시 오랫동안 후판 가공사업을 해온 업체였다.

청람철강이 발행한 어음에 대한플레이트나 세광가공이 배서하면 사정이 달라졌다. 어음 소지자는 발행업체가 결제하지 못할 경우 배서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 공급업체는 청람철강의 재무상태를 걱정하면서도 대한플레이트의 배서를 믿고 제품을 공급했다.

어음은 물품대금 결제뿐 아니라 다른 거래에도 사용됐다.


어떤 업체는 청람철강 어음을 받아 철강재 매입대금을 지급했고, 또 다른 업체는 자금시장에서 할인해 현금화했다. 몇 차례 배서가 이어지면서 최초 거래와 무관한 업체까지 어음을 보유하게 됐다.


시장에서 유통된 청람철강 관련 어음은 만기 기준으로 200억원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정확한 규모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음은 여러 업체를 거치며 나뉘었고, 일부는 금융기관에 할인됐으며, 일부는 다시 원자재 대금으로 지급됐다.

부도가 발생했을 때 최종 어음 소지자는 최초 제품 공급업체와 전혀 다른 회사인 경우도 있었다.




5. 수입 후판이라는 시간차


세 회사의 거래에서 또 하나 중요한 축은 수입 후판이었다.

대한플레이트는 일본과 중국의 철강사에서 후판을 수입했다. 수입계약을 체결한 뒤 제품이 국내에 도착하기까지는 통상 수개월이 걸렸다.

신용장을 개설한 업체는 선적 시점과 결제 시점 사이의 시간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대한플레이트는 무역대행업체를 통해 후판 3,000톤을 수입했다. 수입가격과 관세, 해상운임을 합하면 국내 도착원가는 kg당 900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제품이 항구에 도착하자 청람철강은 이를 kg당 860~870원에 시장에 내놓았다.

“수입재 정리물량이다.”

“창고 공간이 부족해 빨리 처분한다.”

“다음 달 가격이 더 내려갈 것 같아 손절하는 것이다.”


시장에는 여러 설명이 돌았다.

현금 구매업체들은 이유를 깊이 따지지 않았다. 정상가격보다 싸고, 제품의 품질과 서류에 문제가 없다면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수입 후판은 며칠 만에 팔렸다.


청람철강과 대한플레이트는 수십억원의 현금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몇 달 뒤 수입 신용장 결제일이 돌아오면 외화대금을 갚아야 했다.

그때 필요한 돈은 다음 수입물량이나 새로운 국내 매입거래에서 마련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당장의 현금은 생겼지만 미래의 결제부담은 계속 커졌다.



6. 피해자인가, 참여자인가


부도 직후 세광가공은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세광가공이 보유한 청람철강 관련 어음과 미수금은 약 45억원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청람철강을 믿고 거래했다가 손실을 입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세광가공은 수년 동안 청람철강과 대한플레이트의 후판을 절단해 왔다. 시중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제품이 반복적으로 출하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청람철강이 정상적인 영업이익을 내기 어렵다는 점을 몰랐을 리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광가공이 청람철강의 어음에 배서한 기록도 확인됐다. 일부 거래에서는 가공비를 현금으로 받았고, 저가 후판을 우선 공급받아 다른 업체에 판매하기도 했다.

세광가공이 전체 구조를 설계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실제로 상당한 피해를 본 것도 사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거래에서 오랫동안 이익을 얻은 뒤 마지막 순간에 피해자만을 자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였다.

서도현은 세광가공의 거래내역을 살펴보다가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청람철강의 자금사정이 나빠질수록 세광가공에 공급되는 후판 가격은 더 낮아졌다.

부도 석 달 전에는 시장가격보다 kg당 15원 낮았고, 한 달 전에는 35원 낮았다. 부도 직전 마지막 거래에서는 무려 kg당 60원 낮았다.

서도현은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


‘마지막 현금화.’



7. 숫자가 말해 주는 것


대한플레이트의 마지막 재무제표에는 매출 720억원, 미지급금 92억원, 미수금 75억원이 기록돼 있었다.

미수금 가운데 60억원 이상이 청람철강 관련 채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부채비율은 700%를 넘었고, 총차입금의 상당 부분은 은행대출이었다. 매입처에 발급한 지급보증과 담보제공 내역까지 합치면 실제 우발채무는 장부보다 더 클 가능성이 있었다.

청람철강은 매출 580억원을 올렸지만 유통업체에 지급하지 못한 매입대금이 130억원 이상 남아 있었다.

두 회사의 매출을 합하면 1,300억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실제 현금은 남아 있지 않았다.

재고도 거의 없었다.

청람철강 창고에 남아 있던 후판은 2,000톤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마저 상당 부분이 금융기관이나 공급업체의 담보로 잡혀 있었다.


대한플레이트의 공장에는 절단 중인 제품이 있었지만 소유권이 불분명했다. 대한플레이트가 매입한 제품인지, 청람철강이 위탁한 물건인지, 세광가공이 가공 중인 원재료인지 장부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 장의 후판에 여러 회사의 채권이 동시에 얽혀 있었다.



8. 피해업체들


부도가 공식화되자 피해신고가 이어졌다.

수입신용장을 대신 개설해 준 무역업체는 약 38억원의 결제대금을 떠안았다.

후판을 공급한 대형 유통업체는 12억원의 외상매출채권을 신고했다.


지방 철강업체는 7억원짜리 어음을 보유하고 있었고, 가공업체 두 곳은 각각 5억원과 9억원의 미수금을 주장했다.

운송업체와 창고업체도 수억원의 운임과 보관료를 받지 못했다.


부도 발생 초기 파악된 피해액만 150억원을 넘었다. 아직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어음과 지급보증까지 포함하면 200억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피해업체들의 성격도 다양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한 청람철강에 제품을 공급한 업체가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싼 가격을 알면서도 현금으로 제품을 매입한 업체도 있었다.


어떤 회사는 물품거래 없이 어음만 할인해 줬고, 어떤 회사는 어음을 다른 공급업체에 넘겼다.

모두가 같은 사건에 연결돼 있었지만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는 달랐다.




9. 사라진 현금


시장이 가장 궁금해한 것은 저가 판매로 확보한 현금의 행방이었다.

청람철강은 매년 수백억원의 제품을 현금으로 팔았다. 대한플레이트 역시 은행에서 대규모 대출을 받았다.

그럼에도 두 회사에는 변제할 돈이 없었다.


일부 자금은 기존 어음 결제에 사용된 것으로 보였다. 일부는 수입대금과 은행이자, 직원 급여, 공장 운영비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모든 흐름이 설명되지는 않았다.


회사 장부에는 관계사 대여금과 선급금, 가지급금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특정 거래처에 보낸 돈이 며칠 뒤 다른 회사에서 다시 들어오는 사례도 있었다.

부도 직전에는 대표자와 특수관계인에게 지급된 자문료와 임대보증금도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자금이 개인적으로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계좌추적 없이 이를 단정할 수는 없었다.


서도현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고급 승용차나 해외여행 기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짜 단서는 법인계좌에 있었다.

어느 날, 누구에게, 무슨 명목으로 돈이 이동했는지를 확인하면 사건의 윤곽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었다.




10. 마지막 어음

부도 발생 한 달 뒤 서도현은 한 철강업체 사장에게서 어음 사본을 건네받았다.

액면금액은 8억원이었다.


발행인은 청람철강, 첫 번째 배서인은 대한플레이트, 두 번째 배서인은 세광가공이었다. 이후 두 곳의 유통업체를 더 거쳐 최종적으로 지방의 철강업체가 보유하고 있었다.

어음 발행일은 청람철강이 사실상 지급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 이후였다.

그날 청람철강은 대한플레이트에서 후판을 매입했다. 대한플레이트는 대금으로 청람철강의 어음을 받았고, 곧바로 배서해 다른 매입처에 넘겼다.


그 사이 후판은 세광가공을 거쳐 현금으로 판매됐다.

물건은 사라졌고, 현금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어음뿐이었다.


서도현은 세 사람의 관계를 다시 생각했다.

윤태석은 철강 유통을 알고 있었다.

박준호는 금융과 대출을 알고 있었다.

이민재는 가공과 물류를 알고 있었다.


세 사람이 각자의 영역만 담당했다면 누구도 전체 구조를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유통업자는 금융을 몰랐다고 말하고, 금융 전문가는 실제 판매를 몰랐다고 말하며, 가공업자는 단순히 제품을 잘라 줬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 사람의 거래를 하나로 연결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타났다.

어음으로 철강재를 확보하고, 가공과 유통을 거쳐 즉시 현금화한 뒤, 그 현금으로 과거의 만기를 막는 구조였다.

한 회사가 멈추면 모두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체였다.




11. 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회생법원은 대한플레이트의 자산과 부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채권자들은 청람철강의 재고와 매출채권을 가압류했고, 수사기관은 일부 계좌자료와 어음 발행내역을 확보했다.


청람철강 대표 한서진은 자신도 윤태석에게 속았다고 주장했다.

윤태석은 영업을 했을 뿐 자금관리는 박준호가 담당했다고 말했다.

박준호는 대한플레이트가 청람철강의 부도로 가장 큰 피해를 본 회사라고 항변했다.

이민재는 세광가공이 단순한 가공업체였으며 어음배서는 거래관행상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정상적인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회사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손실이 발생하는 거래가 수년간 계속된다면 그 손실을 메우는 다른 돈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 돈이 은행대출일 수도 있고, 공급업체의 외상대금일 수도 있으며, 아직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어음일 수도 있다.

신규 자금이 계속 들어오는 동안에는 회사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매출은 늘고, 창고에는 철강재가 쌓이며, 트럭은 밤낮없이 출입한다. 대표자는 대형 수요업체와 거래한다고 자랑하고, 금융기관은 늘어난 매출을 근거로 대출을 연장해 준다.

하지만 거래가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드러난다.


매출은 있었지만 이익은 없고, 제품은 팔렸지만 현금은 남아 있지 않으며, 회사에는 어음과 채무만 쌓여 있다.

서도현은 텅 빈 청람철강 창고를 바라봤다.


바닥에는 후판을 쌓아 두었던 녹슨 자국만 남아 있었다.

철은 사라졌지만 철이 남긴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음에는 언제나 만기일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아무리 능숙하게 시간을 돌려도, 만기만큼은 영원히 미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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