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적 인증의 언어와 미래 제철기술의 언어를 구분해야 한국 철강사의 현재 위치가 보인다
용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국내 철강업계에서 ‘저탄소 강재’와 ‘그린스틸’은 자주 같은 뜻처럼 사용된다. 그러나 정책과 거래, 기술투자 관점에서 두 표현을 그대로 등치시키면 현재의 감축 제품과 미래의 near-zero 생산체제를 혼동하게 된다. 특히 2026년 6월 17일 시행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 이른바 철강산업법은 법률상 ‘저탄소철강 인증’ 체계를 명시하고 있다. 법의 목적도 산업 경쟁력 강화와 탄소중립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는 데 있으며, 단순한 친환경 홍보가 아니라 인증과 실증, 인프라, 재생철자원, 사업재편까지 포괄하는 산업 전환법의 성격을 갖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법률이 ‘그린스틸’이라는 마케팅 표현 자체를 인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법정 제도의 중심어는 저탄소철강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향후 저탄소 제품의 공공조달, 인센티브, 수요기업 연계, 인증 표시 등이 확대될 경우 실무적으로는 어떤 제품이 저탄소철강 인증기준을 충족하는지가 거래와 조달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저탄소와 near-zero는 기능이 다르다
국제적으로도 ‘green steel’에는 아직 하나의 보편적 법적 정의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IEA와 ResponsibleSteel, 유럽 LESS, 중국 C2F 등은 ‘low-emissions’와 ‘near-zero emissions’처럼 배출 성과를 계량화하는 용어와 기준을 발전시키고 있다. IEA는 low-emissions를 궁극적 near-zero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감축을 이룬 재료로 설명하고, near-zero는 넷제로 에너지시스템의 종착점과 양립할 수 있는 기술과 배출 수준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구분한다.
이 구분은 한국 시장에도 유용하다. 기존 고로의 효율 개선, 스크랩 투입 확대, 전기로 혼합조업, 저탄소 전력 사용 등을 통해 기존 제품보다 탄소발자국을 낮춘 강재는 ‘저탄소철강’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반면 석탄 환원 자체를 수소로 바꾸거나 재생에너지 기반 DRI-EAF 체제를 구축해 배출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것은 near-zero 또는 fossil-free 철강에 가까운 장기 목표다. 본 보고서에서는 이런 국제적 near-zero 지향 철강을 실무적 의미의 ‘그린스틸’로 사용한다.
왜 이 차이가 시장에서 중요해졌나
이 차이는 단순한 용어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조선·가전·건설 고객은 이제 강재의 가격과 기계적 성질뿐 아니라 제품 탄소발자국을 공급망 데이터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유럽 CBAM, 기업 Scope 3 감축목표, 저탄소 공공조달이 확대될수록 “어떤 공정으로 만들었는가”와 “얼마나 줄였는가”를 구분해 증명해야 한다. 탄소감축 수준을 모호한 ‘그린’이라는 표현만으로 포장하면 오히려 그린워싱 논란과 인증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국내 시장에서는 세 층위가 동시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첫째는 일반 강재, 둘째는 검증 가능한 배출 감축을 가진 저탄소철강, 셋째는 넷제로 종착점과 양립하는 near-zero 또는 사실상 무화석연료 철강이다. 가격 프리미엄과 고객의 조달 의무도 이 세 층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국 철강업의 현재 위치
2026년 한국 철강산업은 첫 번째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로 본격 이동하고 있다. 철강산업법과 하위법령이 시행됐고, 포스코는 광양에 연산 250만 톤 전기로를 준공해 저탄소 생산을 상업 설비로 확대했다. 현대제철은 2026년 1분기부터 전기로에서 스크랩과 HBI를 미리 녹인 쇳물과 고로 용선을 결합하는 Pre-melting 복합공정을 저탄소 제품 전략의 1단계로 제시했다. 동국제강과 세아베스틸은 이미 전기로 기반이라는 구조적 장점을 활용해 에너지 효율과 스크랩 순환, 제품 탄소관리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반면 수소환원제철은 아직 상용화 완료 단계가 아니다. 포스코 HyREX는 포항에 연산 30만 톤 실증설비를 건설해 2028년 준공, 2030년까지 단계적 시험조업과 상용기술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제철의 Hy-Arc와 수소환원제철 역시 연구개발과 중장기 전환의 영역이다. 결국 지금 한국에서 실제로 거래와 생산의 중심에 놓인 것은 저탄소철강이고, 그린스틸은 그 다음 단계의 산업 구조를 규정하는 목표에 가깝다.
한눈에 보는 핵심 구조
| 구분 | 저탄소철강·저탄소 강재 | 그린스틸(본 보고서의 실무적 정의) |
|---|---|---|
| 개념의 성격 | 법·인증·제품 탄소발자국 중심 | 시장·기술 전환의 장기 목표 |
| 감축 수준 | 기존 경로 대비 실질적 감축 | near-zero 또는 무화석연료 수준 지향 |
| 가능 공정 | 고로 효율화, 전기로, 스크랩, HBI, 저탄소 전력 등 | 수소 DRI, HyREX, 재생전력 기반 EAF 등 |
| 2026년 한국 | 인증·제품화·상업설비 확대 단계 | 실증·R&D·인프라 구축 단계 |
| 핵심 질문 | 얼마나 줄였고 검증 가능한가 | 넷제로 종착점과 양립하는가 |
전략 판단: 저탄소철강과 그린스틸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 ‘현재 감축 성과를 시장화하는 층위’와 ‘넷제로와 양립하는 최종 공정 층위’로 연결해 보는 것이 적절하다. 국내 정책은 전자를 제도화하면서 후자를 위한 기술·인프라를 동시에 육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