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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계절㉙ — 아연의 마진

강철의 계절㉙ — 아연의 마진


해당 완제품: 용융아연도금강판(GI) | 공간: 충남 냉연도금 재압연사 영업회의실, 목요일 오후


내려간 열연, 내려가지 않는 오늘의 원가

목요일 오후, 충남의 냉연도금 재압연사 영업회의실. 박서진은 열연 원가표와 GI 판매가를 한 화면에 겹쳐 놓았다. 원료인 열연이 내려가면 고객은 GI도 바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장 안에는 지난달 비싼 열연으로 만든 코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아연, 가스, 가공비, 금융비용을 더하면 재압연사의 마진은 이미 얇았다.


영업팀장이 회의 시작과 동시에 말했다. “자동차 부품사에서 다음 달 계약가를 톤당 2만원 낮춰달라고 합니다.”

생산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 가격이면 라인을 돌릴수록 부담입니다.”

재무팀장이 물었다. “재고 회전은?”

“지난달 원료로 만든 GI가 아직 남았습니다.”

서진이 말했다. “열연 가격이 내려갔다고 오늘 창고의 코일 원가가 다시 계산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고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중국산 표면처리강판 반덤핑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협상에서 큰 힘이 되지 못했다. 규제가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 고객은 여전히 수입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영업은 주문을 지켜야 했고 생산은 가동률을 지켜야 했으며 재무는 마진을 지켜야 했다. 세 부서가 같은 숫자를 보고도 다른 결론을 냈다.


세 부서, 세 개의 손익계산서

영업팀장이 먼저 말했다. “2만원을 안 빼주면 물량 자체가 줄 수 있습니다.” 생산팀장이 반박했다. “물량을 지키겠다고 마진 없는 코일을 만들면 생산실적만 남습니다.” 재무팀장은 더 냉정했다. “60일 결제로 2만원까지 낮추면 우리가 고객 재고까지 금융해주는 셈입니다.”


서진은 회의실 유리 너머 도금라인을 바라봤다. 은빛 코일이 천천히 감기고 있었다. 밖에서 보면 한 장의 제품이지만, 안에서는 원료가격과 아연가격, 가스비, 가공비, 결제기간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였다.

“단가 하나로만 협상하지 맙시다.”

영업팀장이 물었다. “그러면 뭘 바꿉니까?”

“수량과 결제기간, 납기를 같이 묶습니다.”

서진은 고객 제안서를 다시 만들었다. 가격을 1만원 낮추되 최소 발주량을 두 배로 하고, 결제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줄이는 조건이었다. 고객이 요구한 2만원 인하의 절반만 양보하지만 회사는 재고 회전과 현금흐름을 얻는 구조였다.


단가가 아닌 조합의 협상

오후 늦게 고객과 화상회의가 시작됐다. 고객 구매담당자가 말했다. “저희 요청은 2만원 인하입니다.” 서진이 답했다. “1만원은 가능합니다. 대신 최소 발주량을 두 배로 해주셔야 합니다.” “그럼 재고 부담이 우리 쪽으로 옵니다.” “결제기간은 60일에서 30일로 줄여주십시오.” 상대가 웃었다. “가격도 덜 깎고 돈도 빨리 받겠다는 얘기네요.” “대신 납기 안정성을 드리겠습니다.”


고객은 다른 규격을 꺼냈다. “이 규격은 가격 유지도 어렵습니다.”

서진이 잠시 생각했다. “그 규격은 가격을 유지하되 납기를 10일 단축하겠습니다.”

“단가 대신 납기?”

“귀사 생산계획에 그쪽이 더 중요한 규격 아닙니까?”

상대편 회의실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가격만 보면 고객의 요구는 명확했지만 실제 구매의 목적은 공장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서진은 그 틈을 봤다. 가격과 서비스의 조합을 바꾸면 같은 단가라도 고객이 느끼는 총비용이 달라진다.


조건부 수락

협상은 해가 진 뒤에야 끝났다. 고객은 조건부로 수락했다. 1만원 인하 대신 최소 발주량 확대와 30일 결제, 다른 규격은 가격 유지 대신 10일 단축 납기를 받아들였다.


영업팀장이 회의가 끝나자 말했다. “결국 절반은 깎았습니다.”

재무팀장이 답했다. “대신 돈이 절반의 기간 안에 들어옵니다.”

생산팀장은 발주량 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 편성도 더 안정적입니다.”

서진은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가격만 보면 양보입니다. 손익 전체를 보면 다른 거래입니다.”

그날 저녁 그는 공장으로 내려갔다. 도금욕 위로 열기가 올라오고, 코일 표면이 조명 아래에서 번쩍였다. 열연 가격이 내려간다고 오늘의 코일이 싸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음 달의 경쟁자가 더 싸질 뿐이다. 그래서 오늘의 마진은 오늘의 가격표만으로 지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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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의 단서

퇴근 직전 무역팀에서 공청회 후속 일정이 전달됐다. 반덤핑 조사 관련 일정이었다. 규제의 결론이 언제 나오느냐에 따라 4분기 계약방식이 달라질 수 있었다.


무역팀장이 말했다. “최종 결과가 늦어지면 고객들이 계속 수입재를 협상카드로 쓸 겁니다.”

서진이 물었다. “그럼 다음 계약은?”

“단가 고정보다 조건부 조정 조항을 넣는 게 낫습니다.”

서진은 방금 끝난 협상서를 다시 열었다. 가격, 발주량, 결제기간, 납기. 이제 거기에 규제 일정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철강 거래는 단가표 한 장으로 끝나지 않았다. 계약서의 단서 한 줄이 몇 달의 마진을 바꿀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메모를 남겼다. ‘가격은 낮추되 조건은 빡빡하게.’ 아연의 마진은 제품 표면처럼 얇았지만, 그 얇은 층을 지키는 방법은 단가를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었다.


공장 안에서는 다른 계산이 돌아갔다


협상 다음 날 서진은 생산회의에 들어갔다. 영업에서 얻은 최소 발주량 확대 조건이 실제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생산팀장이 말했다. “발주량이 두 배가 되면 같은 규격 연속 생산이 가능해집니다. 전환 손실은 줄어듭니다.”

재무팀장이 물었다. “그 절감분이 1만원 인하를 상쇄합니까?”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납기 안정성과 가동계획에는 도움이 됩니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협상에서 얻은 것은 단순한 물량이 아니었다. 생산계획을 덜 흔들리게 만드는 예측 가능성이었다. 영업이 가격을 깎았다고 생각한 순간, 생산은 공정 전환을 줄일 수 있었고 재무는 현금 회수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같은 계약이 부서마다 다른 효과를 만들었다.

그날 오후 고객 품질담당자가 추가 전화를 걸어왔다. “납기 10일 단축 조건, 품질 승인에는 영향 없습니까?”

서진이 답했다. “승인 절차는 그대로 갑니다. 일정만 앞당깁니다.”

“급하게 만들다 품질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최소 발주량 조건을 묶은 겁니다. 생산을 더 자주 바꾸지 않고 한 번에 돌릴 수 있게.”


상대가 잠시 침묵했다. “가격협상인 줄 알았는데 생산방식까지 바뀌는군요.”

“가격은 결과고, 원인은 생산과 재고와 결제입니다.”

서진은 전화를 끊고 계약서 초안을 다시 읽었다. 1만원이라는 숫자만 떼어 보면 양보였다. 그러나 발주량, 30일 결제, 10일 단축 납기까지 합치면 그 계약은 완전히 다른 구조였다.


무역팀은 4분기 계약서에 조사 일정과 관련한 재협의 조항을 넣자는 의견을 냈다. 서진은 찬성했다. 규제 결론이 바뀌면 수입재의 협상력도 달라질 수 있었다. 그는 가격을 고정하는 대신 변수가 생겼을 때 다시 협상할 문을 남겼다.


도금라인의 코일은 같은 속도로 돌아갔지만 회사의 마진은 계약조건 하나에 따라 달라졌다. 서진은 이제 ‘얼마에 팔았는가’보다 ‘어떤 조건을 붙여 팔았는가’를 회의자료 첫 줄에 적기 시작했다.


그날의 가격

품목가격주간 변동
용융아연도금강판(GI)108~109만원/톤0

※ 가격은 극중 인물의 의사결정을 설명하기 위한 시장 기준선으로만 사용했다.


이 작품은 실제 철강시장 자료를 모티프로 창작한 픽션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일부 기업·사건은 허구이며, 실제 기업·단체·사건과 관련이 없다. 실제 기업명은 공개된 시장정보와 가격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범위에서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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