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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계절㉒ — 두 달 뒤의 530달러


현재 재고는 오늘의 가격으로 팔지만, 고객은 두 달 뒤 가격으로 흥정했다.





월요일의 첫 숫자

월요일 아침 청람철강 판재영업팀이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주문량이 아니라 환율이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1,410원대가 찍혀 있었다. 지난주까지도 다들 “휴가만 끝나면 거래가 좀 살아나겠지”라고 말했지만, 광복절 연휴까지 지나고 나니 기대를 대신한 것은 수입원가 계산표였다. 정품 열연은 여전히 톤당 96만 원. 수입대응재는 94만 원, 수입재는 91만~92만 원이었다. 숫자는 지난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팀원들은 그것을 같은 시장으로 보지 않았다. 거래가 없는 보합은 가격이 아니라 정지 화면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업팀장 한재호는 회의실 벽에 붙은 출하계획표에서 월요일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오전 출하 예정은 세 건, 합계 68톤. 평소 같으면 오전에만 그 두 배가 잡힐 때도 있었다. “오늘 96을 지키느냐보다 이번 주 안에 96으로 얼마나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는 가격을 내리지 말라는 말 대신 거래의 질을 보자고 했다. 단가를 1만 원 낮춰 100톤을 팔고 나서 그 가격이 시장의 새 기준이 되면, 다음 500톤은 그보다 더 낮은 숫자를 요구받을 수 있었다.



530달러가 회의실에 들어왔다

오전 열한 시, 구매팀 박지훈이 인도네시아산 10월 말적 오퍼를 다시 띄웠다. 톤당 530달러 CFR. 베트남산도 535달러 안팎이었다. 중국·일본산 열연에 무역장벽이 높아진 뒤 한동안 국산재가 편해질 것처럼 보였지만, 시장은 비어 있는 자리를 오래 두지 않았다. 동남아산이 그 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문제는 가격 그 자체보다 시간이었다. 지금 계약하면 도착은 두 달 뒤다. 그러나 고객은 이미 두 달 뒤의 가격을 오늘 협상에 끌어다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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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첫 통화에서 자동차 부품용 가공업체 구매담당자가 말했다. “10월적이 530이면 지금 수입 92도 비싸 보입니다. 국산 96은 더 그렇고요.” 한재호는 “도착원가와 재고금융비용, 품질 차이를 같이 봐야 한다”고 답했지만, 상대가 원하는 것은 원가 강의가 아니었다. 기다리면 싸질 수 있다는 확신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그는 전화를 끊고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철강 영업에서 가장 어려운 경쟁자는 다른 업체가 아니라 ‘기다림’일 때가 있었다.

 


943만 톤이라는 천장

오후 회의에서는 올해 열연 명목수요 추산치가 다시 나왔다. 약 943만 톤. 지난해 938만 톤과 사실상 같은 시장이었다. 그런데 국산 내수판매는 늘고 수입은 줄었다. 수요가 커진 것이 아니라 몫이 바뀐 것이다. 박지훈은 “국산 비중이 거의 80%까지 올라간다고 해서 강한 시장이라고 부르긴 어렵습니다. 수입이 다시 싸지면 그 몫도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연의 회복이 아니라 수입대체의 효과라는 판단이었다.


재무팀은 다른 숫자를 꺼냈다. 창고 재고 중 45일을 넘긴 규격이 전주보다 늘었다. 출하가 늦어지면 가격이 보합이어도 금융비용은 매일 쌓였다. 회사는 그날 신규 매입을 줄이고, 오래된 재고만 조건부로 소진하기로 했다. 고객별로 할인폭을 정하지 않고 재고 연령과 결제조건을 먼저 보겠다는 원칙도 세웠다. 매출보다 현금의 속도를 먼저 계산하는 회의였다.



가격은 오늘보다 먼저 움직인다

퇴근 직전, 창고 셔터 앞에서 한재호는 96만 원짜리 코일과 530달러짜리 오퍼 사이의 거리를 생각했다. 실제 거리는 두 달이었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같은 날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의 재고는 과거 원가로 들어왔고, 오늘의 고객은 미래 원가를 근거로 흥정했다. 가격표에 적힌 숫자는 현재였지만 의사결정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이뤄졌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일 출하표를 확인했다. 112톤. 많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월요일보다 나았다. “내일은 96을 지키는 게 아니라 96이 아직 쓸모 있는 숫자인지 보자.” 모니터를 끄자 회의실 유리창에 코일 창고의 불빛이 비쳤다. 강철은 그대로였고, 시장은 이미 두 달 뒤로 가 있었다.




그날의 가격

※ 가격은 극중 의사결정의 배경이 되는 시장 기준선만 반영했다. 자료: 시장.

품목가격주간 변동
국산 열연 정품96만 원/톤보합
수입대응재94만 원/톤보합
수입재91~92만 원/톤약 1만 원 하락
인도네시아산 오퍼530달러/톤 CFR신규 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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