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한 번에 올랐지만 재고는 여러 가격으로 남아 있었다
8월 6일 오전, 청람철강 형강영업팀의 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중소형 H형강 122만 원 맞습니까?”
“현금이면 조정됩니까?”
“지난달 물량은 얼마에 가능합니까?”
“동국제강 가격은 언제부터 적용됩니까?”
현대제철이 7월 27일부터 H형강 전 규격 판매가격을 톤당 5만 원 인상한 뒤 유통 호가는 빠르게 올라갔다.
이어 동국제강도 8월 12일 출하분부터 중소형 H형강 톤당 121만 원, 대형 H형강 톤당 136만 원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 시장은 상승세였다.
그러나 청람철강 창고 안에는 네 종류의 H형강이 있었다.
인상 전 가격으로 매입한 국산재.
인상 발표 직후 들어온 국산재.
프로젝트 계약가격이 이미 정해진 재고.
장기간 팔리지 않은 비선호 규격 재고.
제품에는 같은 제강사의 마크가 찍혀 있었다.
그러나 장부가격은 모두 달랐다.
반도체 산업단지 입찰
청람철강에 반도체 산업단지 전력설비 건설용 H형강 입찰서가 도착했다.
총물량은 2,400톤이었다.
중소형이 1,600톤, 대형이 800톤이었다.
납기는 6주였다.
프로젝트 구매담당자는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전 규격 동일 공급자가 책임질 것.
성적서와 원산지 서류를 제출할 것.
납기 지연 시 지체상금을 적용할 것.
대금은 현장 검수 후 45일에 지급할 것.
영업팀장은 물량부터 계산했다.
“수주하면 매출이 30억 원에 가깝습니다.”
자금관리팀장은 결제기간을 봤다.
“매입대금은 먼저 지급해야 합니다.”
품질관리팀은 규격표를 확인했다.
“대형 일부는 재고가 없습니다. 신규 생산이 필요합니다.”
물류팀은 납기표를 봤다.
“사업장이 두 곳입니다. 순차 납품이 아니라 동시에 들어가야 합니다.”
같은 입찰서를 보고도 부서마다 다른 위험이 보였다.
영업팀에는 매출이 보였다.
자금팀에는 45일 동안 묶일 돈이 보였다.
품질팀에는 성적서와 규격이 보였다.
물류팀에는 차량과 납기 지체상금이 보였다.
김민철은 입찰가격을 바로 정하지 않았다.
“재고를 네 가지로 나누십시오.”
“규격별입니까?”
“매입시점별, 프로젝트 전용 여부별, 판매 가능 고객별로 나눠.”
“같은 H형강을 그렇게까지 나눌 필요가 있습니까?”
“이번 시장에서는 같은 H형강이 아니야.”
122만 원과 116만 원이 동시에 존재하다
청람철강의 중소형 H형강 유통 호가는 톤당 122만 원이었다.
그러나 창고에는 톤당 110만 원대 중후반에 매입한 재고도 남아 있었다.
경쟁업체 일부는 그 재고를 바탕으로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었다.
입찰 마감 전날, 시장에 경쟁사의 예상가격이 돌았다.
톤당 116만 원대였다.
영업팀장이 급히 김민철을 찾았다.
“우리도 낮춰야 합니다.”
“전량을 그 가격에 공급할 수 있나?”
“기존 재고를 섞으면 가능합니다.”
“기존 재고가 입찰 규격에 맞나?”
“중소형 일부는 맞습니다.”
“대형은?”
“신규 매입해야 합니다.”
“신규 매입가격은?”
“동국제강 목표가격이 적용되면 136만 원입니다.”
낮은 가격의 기존 재고와 높은 가격의 신규 재고를 평균하면 수익은 거의 남지 않았다.
게다가 45일 외상과 두 곳의 분할 납품, 규격별 상차비까지 반영하면 손실 가능성이 있었다.
영업팀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를 놓치면 경쟁사가 산업단지 물량을 선점합니다.”
“수주한 뒤 손실을 보면?”
“다음 물량에서 만회할 수 있습니다.”
김민철이 웃지 않고 물었다.
“아크트레이솔루션도 다음 매출에서 현금을 만회하려고 했어.”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매출을 늘려 손실을 만회한다는 말은 철강업계에서 자주 사용됐다.
그러나 저마진 매출은 더 많은 운전자금을 필요로 했다.
현금회수가 늦어지면 다음 거래를 할수록 자금부족은 커졌다.
성장과 회복이 같은 방향이 아닐 수도 있었다.
최저가 업체의 물량
입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청람철강은 2위였다.
최저가를 제시한 것은 동해구조강이었다.
가격 차이는 톤당 3만2,000원이었다.
총액으로는 적지 않은 차이였다.
영업팀장은 낙담했다.
“기존 재고를 더 반영했으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민철은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납기와 서류까지 포함한 가격인지 보자.”
일주일 뒤 프로젝트 현장에서 연락이 왔다.
동해구조강이 납품한 첫 물량 일부가 반입보류됐다는 소식이었다.
대형 H형강의 성적서에 적힌 제조자와 제품 마킹이 일치하지 않았다.
일부 물량은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이었지만 계약서에는 국산 기준으로 제출돼 있었다. 원산지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발주처가 요구한 품질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규격이었다.
서류상 길이와 실제 납품 길이가 달라 현장에서 추가 절단이 필요했다. 절단 잔재가 늘었고 공정도 지연됐다.
최저가격에는 추가 검사와 절단, 잔재 처리, 크레인 재배치 비용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프로젝트 구매담당자가 청람철강에 전화를 걸었다.
“긴급 대체물량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됩니까?”
“중소형 420톤과 대형 180톤입니다.”
“납기는요?”
“사흘입니다.”
“가격은 기존 입찰가격으로 적용합니까?”
상대방이 말을 멈췄다.
“협의가 필요합니다.”
김민철은 대답했다.
“저희가 제출한 가격이 기준입니다.”
“긴급물량인데 일부 조정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긴급하기 때문에 조정이 어렵습니다.”
창고에서 벌어진 규격 전쟁
청람철강은 대체물량을 준비했다.
문제는 대형 H형강이었다.
필요한 규격 가운데 하나가 창고에 70톤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다른 유통업체와 프로젝트 재고에서 찾아야 했다.
형강영업팀은 전국 유통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해당 규격 110톤 있습니다.”
한 업체가 답했다.
“가격은요?”
“톤당 140만 원입니다.”
“시장가격보다 높습니다.”
“지금 바로 출고 가능한 규격은 많지 않습니다.”
“결제조건은?”
“선입금입니다.”
다른 업체는 80톤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미 다른 프로젝트에 배정된 물량이었다.
세 번째 업체는 가격이 낮았으나 성적서 원본을 확보하지 못했다.
가격이 아니라 사용 가능한 규격과 서류가 부족했다.
김민철은 박준호와 이유진에게도 연락했다.
판재류를 주로 취급하는 두 사람에게 형강 재고는 없었다.
그러나 이유진이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아크트레이솔루션 공장 증축 때 사용하고 남은 H형강이 있지 않았습니까?”
김민철의 표정이 굳었다.
회생절차에 들어간 공장 야드에는 H형강과 일반형강 일부가 남아 있었다.
“그 물건은 회사 재산입니다.”
“관리인 동의를 받아 매각하면 안 됩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관리인도 현금이 필요할 겁니다.”
아크트레이솔루션 공장을 재가동하려면 임금과 전기료, 원재료비가 필요했다. 남은 재고 가운데 생산과 무관한 자재를 적법하게 매각할 수 있다면 회생회사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김민철은 회생관리인에게 연락했다.
회생회사의 H형강이 다시 시장으로 나오다
다음 날 오전, 청람철강과 회생관리인, 감정평가 담당자가 아크트레이솔루션 야드에 모였다.
H형강은 공장 증축 이후 사용하지 않은 잔량이었다.
일부 표면에는 녹이 있었지만 규격과 성적서는 확인됐다.
필요한 대형 규격 120톤도 포함돼 있었다.
관리인이 말했다.
“이 물량은 당초 2차 증축공사에 사용할 예정이었습니다.”
“증축계획이 계속됩니까?”
“현재로서는 어렵습니다.”
“매각대금은 회생회사 계좌로 직접 지급하겠습니다.”
“채권과 상계하려는 것은 아닙니까?”
“아닙니다. 신규 거래로 분리하겠습니다.”
김민철은 과거 미수채권과 이번 구매대금을 섞지 않았다.
청람철강이 아크트레이솔루션에서 받을 돈은 회생절차 안에서 다뤄야 했다.
새로 구입하는 H형강대금은 회생회사의 운영자금이 돼야 했다.
과거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신규 거래대금을 임의로 상계하면 다른 채권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아크트레이솔루션이 보유한 H형강은 감정가격과 공개된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매각됐다.
청람철강은 필요한 규격을 확보했다.
회생회사는 즉시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을 얻었다.
과거 거래에서 묶였던 철강재가 이번에는 투명한 절차를 거쳐 다시 움직였다.
크레인이 다시 움직인 날
대체물량은 사흘째 새벽 현장에 도착했다.
첫 번째 차량에는 중소형 H형강이 실려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차량에는 대형 규격이 적재돼 있었다.
품질담당자가 성적서와 마킹을 대조했다.
이상이 없었다.
현장 크레인이 H형강을 들어 올렸다.
며칠 동안 바닥에 내려져 있던 작업자재가 다시 구조물 위로 올라갔다.
프로젝트 구매담당자가 김민철에게 말했다.
“가격은 청람철강 제시안을 적용하겠습니다.”
“지체상금 조항은 어떻게 됩니까?”
“이번 대체물량에는 적용하지 않겠습니다.”
“검수 후 45일 결제는 유지합니까?”
“대체물량은 50% 선지급, 잔액은 30일로 바꾸겠습니다.”
최저가 입찰에서 패한 청람철강은 더 높은 가격으로 일부 물량을 공급하게 됐다.
그러나 김민철은 승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첫 계약을 따냈다면 낮은 가격과 긴 결제조건을 떠안았을 것이다.
프로젝트가 급해진 뒤에야 발주처는 가격 외의 조건을 보기 시작했다.
규격.
성적서.
원산지 승인.
납기.
결제조건.
철강재의 실제 가격은 그 모든 항목이 합쳐진 숫자였다.
결말 — 121만 원은 가격이 아니라 경계선이었다
H형강 중소형 목표가격은 톤당 121만 원이었다.
유통 호가는 122만 원까지 올라갔다.
대형 목표가격은 136만 원이었다.
그러나 시장에는 여전히 110만 원대에 매입한 기존 재고가 남아 있었다.
같은 규격이 서로 다른 가격으로 거래됐다.
제강사의 인상가격은 앞으로 들어올 물량의 기준이었다.
유통업체의 기존 재고는 과거 가격의 흔적이었다.
프로젝트 현장의 긴급물량은 납기와 품질을 포함한 또 다른 가격을 만들었다.
김민철은 출고가 끝난 뒤 창고 재고표를 다시 정리했다.
기존 재고와 신규 재고를 분리했다.
프로젝트 승인재와 일반재를 나눴다.
성적서가 완비된 물량과 보완이 필요한 물량을 구분했다.
같은 H형강이라는 이유로 같은 가격을 적용하지 않았다.
영업팀장이 물었다.
“122만 원이 시장에 정착하겠습니까?”
김민철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창고 밖으로 마지막 차량이 빠져나갔다.
“저가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봐야지.”
“제강사 인상보다 재고가 중요합니까?”
“가격표는 하루에 바뀌지만 재고는 팔릴 때까지 남아.”
그는 잠시 뒤 덧붙였다.
“그리고 현장이 그 가격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봐야 한다.”
121만 원은 단순한 목표가격이 아니었다.
인상 전 재고와 인상 후 재고를 가르는 선이었다.
가격을 받아들일 수 있는 프로젝트와 그렇지 않은 현장을 가르는 선이었다.
현금이 남는 거래와 매출만 남는 거래를 가르는 선이었다.
그해 여름 H형강시장은 상승했다.
그러나 모든 유통업체가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가격이 오른 만큼 재고가치를 높인 업체가 있었다.
새 가격에 물건을 사서 옛 가격에 팔아야 했던 업체도 있었다.
낮은 가격으로 수주한 뒤 납기와 품질비용을 떠안은 업체도 있었다.
철강시장에서 가격 인상은 출발점이었다.
수익은 마지막 대금이 들어온 뒤에야 확정됐다.
이번 회차의 형강시장
| 구분 | 가격 | 변동 |
|---|---|---|
| 국산 중소형 H형강 유통 호가 | 톤당 122만 원 | 인상 |
| 동국제강 중소형 목표가격 | 톤당 121만 원 | 8월 12일 출하분부터 적용 |
| 동국제강 대형 목표가격 | 톤당 136만 원 | 8월 12일 출하분부터 적용 |
| 앵글 | 톤당 105만 원 | 보합 |
| 찬넬 | 톤당 108만 원 | 보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