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급이 줄었지만 부족한 것은 철근이 아니었다
오전 6시 40분, 수도권 철근 유통업체들의 단체대화방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전기로 출강구가 어둡게 식어 있었다.
제강사가 단체휴가와 정기보수에 들어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인천과 포항, 부산·경남권의 주요 제강사들이 짧게는 5일, 길게는 14일 동안 제강·압연설비 가동을 조정했다. 생산 감소는 확실했다.
단체대화방의 반응은 엇갈렸다.
“재고 줄겠군요.”
“휴가 끝나면 철근 오르겠습니다.”
“현장도 다 쉽니다.”
“재가동하면 다시 쏟아집니다.”
청람철강 영업팀장은 대화방을 한참 내려보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국산 철근 유통가격은 톤당 86만5,000원 안팎이었다. 수입산은 83만 원에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8월 철근 기준가격은 톤당 102만5,000원으로 인상됐다.
가격표만 보면 서로 다른 시장의 숫자처럼 보였다.
“기준가격과 유통가격 차이가 16만 원입니다.”
영업팀장이 말했다.
김민철이 대답했다.
“가격 차이가 아니라 시간 차이일 수도 있어.”
“무슨 뜻입니까?”
“7월 평균 스크랩 가격은 높았고 지금 현물 스크랩 가격은 내려가고 있다. 제강사는 지난달 원가로 이야기하고, 유통은 오늘 가격으로 이야기한다.”
7월 평균 스크랩 가격은 톤당 47만4,000원이었다. 2분기 평균보다 5.1% 높아 철근 기준가격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현물 스크랩 시장은 이미 두 차례 인하를 겪었다. 인센티브 축소까지 포함하면 실질 인하폭은 더 컸다.
과거 원가가 제품가격을 올리고 있었다.
현재 원가는 제품가격을 누르고 있었다.
두 시간이 같은 시장 안에서 충돌했다.
데이터센터 공사장의 주문
오전 8시 12분, 청람철강으로 긴급 주문서가 들어왔다.
수도권 데이터센터 건설현장이었다.
철근 SD500 25밀리와 32밀리, 총 1,800톤이었다.
납기는 열흘이었다.
현장 구매책임자가 직접 청람철강을 찾아왔다.
“기초 매트와 전력동 구조물 공정에 들어갈 물량입니다.”
그는 두꺼운 공정표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콘크리트 타설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철근이 들어오지 않으면 펌프카와 레미콘, 인력 일정이 모두 밀립니다.”
“기존 공급사는요?”
김민철이 물었다.
“여신한도를 줄였습니다.”
“결제가 늦었습니까?”
“시행사 기성 확정이 지연됐습니다.”
“얼마나?”
“한 달 정도입니다.”
“한 달입니까, 한 달 이상입니까?”
구매책임자는 대답을 늦췄다.
“일부 업체는 두 달입니다.”
청람철강 자금관리팀장이 지급보증서를 확인했다.
보증을 제공한 곳은 중소형 금융회사였다. 아크트레이솔루션 회생채권자 목록에도 등장했던 회사였다.
“이 보증은 공사도급채권을 담보로 한 구조입니다.”
자금관리팀장이 말했다.
“선순위 대주단이 먼저 회수하고 잔여금에서 철강대금이 지급됩니다.”
김민철이 구매책임자를 바라봤다.
“직접지급은 가능합니까?”
“시행사가 개별 자재업체에 직접지급하는 구조는 어렵습니다.”
“원도급사는?”
“협의해봐야 합니다.”
“선수금은요?”
“20%까지 가능합니다.”
“나머지 80%는?”
“60일 결제입니다.”
영업팀장이 공정표를 다시 봤다.
철근 1,800톤은 적지 않은 물량이었다. 휴동기에 제강사 출고가 줄면 규격별로 물량을 맞추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김민철은 물량보다 지급순서를 먼저 봤다.
공사장에는 철근이 필요했다.
청람철강에는 현금이 필요했다.
둘의 긴급성은 같은 방향이 아니었다.
철근 1,800톤을 둘러싼 네 개의 가격
청람철강은 세 곳에 견적을 요청했다.
첫 번째 제강사는 기준가격을 원칙대로 적용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 제강사는 신규 주문보다 기존 계약물량을 우선했다.
세 번째 유통업체는 톤당 86만 원대에 물량을 내놓았지만 현금결제를 요구했다.
수입 철근을 가진 업체는 톤당 83만 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필요한 강종과 규격을 전량 맞출 수 없었다.
회의실 칠판에 네 개의 숫자가 적혔다.
102만5,000원.
91만 원대.
86만5,000원.
83만 원.
기준가격, 제강사 유통향 가격, 국산 유통가격, 수입재 가격이었다.
같은 철근에 네 개의 가격이 존재했다.
현장 구매책임자가 말했다.
“시장가격이 86만 원대인데 90만 원 이상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제강사 영업담당자가 화상회의 화면에서 대답했다.
“7월 평균 스크랩 가격이 산식 기준을 넘었습니다. 기준가격 인상은 원가에 따른 것입니다.”
“스크랩은 지금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현재 현물가격은 다음 조정에 반영됩니다.”
“그러면 수요업체가 과거 원가를 부담해야 합니까?”
“저희도 과거 고가 스크랩로 생산한 재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철근가격을 놓고 대화했지만 실제로는 손실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다투고 있었다.
제강사는 고가 원료로 생산한 재고를 할인할 수 없었다.
유통업체는 높은 매입가격을 떠안은 채 현금화를 서둘러야 했다.
건설사는 이미 낮아진 현재 시세로 구매하려 했다.
현장에서는 철근이 필요했지만 시장 전체에는 철근이 부족하지 않았다.
부족한 것은 손실을 받아들일 주체였다.
휴동 중에 쏟아진 저가 물량
오후 2시, 시장에 예상하지 못한 물량이 나왔다.
중부권 유통업체가 국산 철근 3,000톤을 톤당 85만 원에 정리한다는 소식이었다.
현금 조건이었다.
“제강사들이 휴동 중인데 85만 원이라고요?”
영업팀장이 물었다.
“결제일이 내일이랍니다.”
“매입가격은?”
“90만 원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톤당 5만 원 넘게 손실을 보는군.”
유통업체는 가격이 더 내려갈 것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었다.
은행 결제일을 넘기지 않기 위해 재고를 현금으로 바꾸고 있었다.
가격 전망보다 자금 일정이 먼저였다.
저가 물량 소식이 퍼지자 데이터센터 구매책임자도 태도를 바꿨다.
“85만 원 물량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전 규격이 아닙니다.”
“그래도 시장 기준은 내려간 것 아닙니까?”
“현금 정리물량과 프로젝트 공급가격은 다릅니다.”
“철근은 철근 아닙니까?”
김민철이 공정표를 앞으로 밀었다.
“그렇다면 직접 구매하십시오.”
구매책임자의 표정이 굳었다.
“물량을 확보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가 물량이 귀사 규격과 납기를 충족하는지 확인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25밀리와 32밀리를 전량 맞출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청람철강이 매입해 납품하면 되지 않습니까?”
“현금으로 매입해 60일 뒤에 받아야 합니다. 그 금융비용과 부도위험을 누가 부담합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저가 철근은 시장의 가격을 낮췄다.
그러나 그 철근을 필요한 규격으로 모으고, 검사하고, 운송하고, 현장 일정에 맞춰 공급하는 비용까지 없앤 것은 아니었다.
공사장으로 간 김민철
김민철은 현장을 직접 보기로 했다.
데이터센터 공사장은 거대한 흙막이벽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초 철근을 조립할 공간은 이미 준비돼 있었고 레미콘 타설 일정도 벽면 게시판에 적혀 있었다.
현장 한쪽에는 기존 공급업체가 납품한 철근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필요한 25밀리와 32밀리 물량은 부족했다.
가공업체 소장이 김민철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이번 물량이 안 들어오면 다음 주부터 작업을 줄여야 합니다.”
“기성대금은 받았습니까?”
소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두 달째 일부만 받았습니다.”
“그래도 작업을 계속합니까?”
“멈추면 기존 대금도 못 받습니다.”
아크트레이솔루션 영업팀장이 했던 말과 같았다.
공급을 멈추면 기존 돈도 받기 어렵다.
그래서 다시 물건과 노동을 투입한다.
받기 위해 더 넣고, 더 넣었기 때문에 받을 돈이 늘어난다.
김민철은 공사장 사무실에서 기성지급 현황을 확인했다.
원도급사의 자금 집행이 늦어진 이유는 공정률 분쟁 때문이었다. 시행사는 일부 공정이 계약조건에 미달한다고 주장했고 원도급사는 설계변경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철근대금은 그 분쟁 뒤에 놓여 있었다.
건설현장은 돌아가고 있었지만 돈은 공정표만큼 빠르게 이동하지 않았다.
세 개로 나눈 계약
김민철은 전량 공급을 포기했다.
대신 계약을 세 부분으로 나눴다.
첫 번째 400톤은 선수금과 동시에 출고했다.
두 번째 600톤은 원도급사의 직접지급 확약을 받는 조건으로 공급했다.
나머지 800톤은 첫 번째 기성금이 정상 지급된 뒤 출고하기로 했다.
현장 구매책임자가 반발했다.
“분할 공급이면 전체 공정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전체를 외상으로 공급하면 청람철강의 자금이 멈춥니다.”
“다른 업체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찾으셔도 됩니다.”
“납기를 맞출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제조건도 거래조건입니다.”
결국 원도급사가 600톤에 대한 직접지급 확약서를 발행했다.
청람철강은 제강사 재고와 유통업체 물량을 섞어 필요한 규격을 확보했다. 저가 85만 원 물량도 일부 사용했지만, 운송과 가공, 분할 납품비를 반영해 현장 공급가격은 그보다 높아졌다.
첫 차량이 현장에 도착한 날, 전기로는 여전히 멈춰 있었다.
그러나 시장에는 철근이 넘쳤다.
생산은 줄었지만 수요가 더 약했고, 결제일을 앞둔 재고는 계속 시장으로 나왔다.
결말 — 멈춘 것은 설비가 아니라 신용이었다
8월 철근 기준가격은 톤당 102만5,000원이었다.
유통가격은 86만5,000원 안팎이었다.
수입재는 83만 원이었다.
제강사 휴동으로 생산량이 감소했지만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
시장은 공급량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건설현장 출하와 재고 회전, 유통업체의 결제일, 제강사의 고원가 재고, 수입재 가격이 동시에 작동했다.
김민철은 데이터센터 현장으로 들어가는 철근 차량을 바라봤다.
철근은 콘크리트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건물이 완성되면 누구도 철근의 가격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공급업체 장부에는 매입가격과 결제일, 이자와 채권회수기간이 오래 남는다.
전기로는 다시 가동될 것이다.
압연라인도 움직일 것이다.
문제는 현장의 신용과 유통업체의 현금이 같은 속도로 다시 움직이느냐였다.
그해 여름 철근시장에서 가장 오래 멈춘 것은 설비가 아니었다.
서로를 믿고 외상으로 물건을 보내는 일이었다.
이번 회차의 철근·스크랩시장
| 구분 | 가격 | 변동 |
|---|---|---|
| 8월 철근 기준가격 | 톤당 102만5,000원 | 전월 대비 2만3,000원 상승 |
| 국산 철근 유통가격 | 톤당 86만5,000원 | 보합 |
| 수입 철근 유통가격 | 톤당 83만 원 | 보합 |
| 7월 평균 스크랩 | 톤당 47만4,000원 | 2분기 평균 대비 2만3,000원 상승 |
| 2분기 평균 스크랩 | 톤당 45만1,000원 | 기준치 |
자료: 시장 및 원자료 가격산식.
다음 회 예고
강철의 계절⑯ — 121만 원의 문턱
H형강 제강사들이 잇따라 가격 인상에 나선다.
중소형 목표가격은 톤당 121만 원, 유통 호가는 122만 원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창고에는 인상 전 가격으로 매입한 재고가 남아 있다.
한 프로젝트에서는 신가격을 적용해 달라고 하고, 다른 현장에서는 구가격 재고를 찾아 가격을 깎는다.
청람철강은 반도체 산업단지 전력설비 건설에 필요한 H형강 입찰에 참여한다.
최저가를 제시한 경쟁사는 납품 직전 성적서와 원산지 문제에 부딪힌다.
가격표에는 없는 비용이 현장 크레인을 멈춰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