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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위기는 어떻게 시작되는가④] 가장 안전한 국채가 흔들리던 날 — 은행 밖의 돈은 어떻게 위기를 키우는가

[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위기는 어떻게 시작되는가④] 가장 안전한 국채가 흔들리던 날 — 은행 밖의 돈은 어떻게 위기를 키우는가

[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위기는 어떻게 시작되는가④] 가장 안전한 국채가 흔들리던 날 — 은행 밖의 돈은 어떻게 위기를 키우는가

2022년 영국 연금시장 충격에서 사모대출·헤지펀드까지, 보이지 않는 금융 연결망의 작동 원리

경제금융소사 특별기획 제4부 | 2026년 11월 5일

2022년 9월 23일, 영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 등을 담은 이른바 ‘성장 계획’을 발표하자 금융시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채를 보유한 투자자들이 높은 금리를 요구하면서 영국 장기 국채가격이 급락했다. 평소라면 정부의 빚을 나타내는 국채는 비교적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 국채를 둘러싼 거래에서 영국의 연금시장과 중앙은행까지 긴급하게 움직여야 했다.

위험한 주식이나 부실한 회사채가 아니라 국채시장에서 금융안정 문제가 터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국채 자체에만 있지 않았다. 국채를 담보로 얼마나 많은 돈을 빌렸는지, 가격이 움직일 때 누가 당장 현금을 내야 하는지, 누가 그 자산을 서둘러 팔 수밖에 없는지에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금융거래가 한꺼번에 현금을 요구하기 시작하는 순간, 가장 안전해 보이는 자산조차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이번 이야기는 바로 그 돈의 연결망을 따라간다.

연금은 미래를 위한 돈인데, 왜 오늘 현금이 급했을까

영국의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은 장래에 연금 수급자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을 약속한다. 자산과 지급 의무의 시점이 달라지면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이 커진다. 이를 줄이기 위해 일부 연금 관련 펀드는 장기 국채와 금리 파생상품을 이용하는 ‘부채연계투자(LDI)’ 전략을 활용했다.

LDI는 출발부터 위험한 투기 수법으로만 볼 수 없다.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액과 투자자산 사이의 금리 위험을 조정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문제는 이런 전략의 일부가 레버리지, 곧 자기자금 외에 차입과 파생상품을 이용해 큰 금리 노출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는 점이다.

국채금리가 갑자기 오르면 국채가격은 떨어진다. 금리 파생상품과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 계약의 가치도 변한다. 계약 상대방은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추가 담보나 현금을 요구할 수 있다. ‘마진콜’이란 바로 이런 추가 담보 요구다. 장기적으로 지급 능력이 있는 연금이라도 당장 내야 할 현금이 충분하지 않다면 문제가 생긴다.

일부 LDI 펀드는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팔아야 했다. 그러나 많은 펀드가 같은 시기에 같은 장기 국채를 팔자 가격은 더 하락하고 금리는 더 뛰었다. 그러면 추가 담보 요구가 다시 늘었다. 가격 하락이 매도를 부르고, 매도가 다시 가격 하락을 부르는 악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영란은행의 사후 분석과 당국자 설명은 2022년 9~10월 이러한 강제매도가 장기 국채시장의 유동성을 마르게 했다고 기록한다. 영란은행은 시장 기능을 안정시키고 펀드에 대응 시간을 주기 위해 한시적인 국채 매입에 나섰다. 당시 13일 동안 매입한 국채는 총 193억 파운드였다. 이 수치는 2022년 당시 조치의 실적이며, 현재 운용액이나 손실액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중요한 구분이 있다. 영국 정부가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지 못해서 발생한 전형적인 국채 부도 사태가 아니었다. 국채를 활용해 금융거래를 설계한 기관들이 급격한 금리 변동을 견딜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생긴 시장 기능의 위기였다.

은행의 간판 밖으로 나온 금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연결됐다

은행은 예금을 받아 대출하는 금융기관으로 익숙하다. 하지만 오늘날 자금 중개는 투자펀드, 헤지펀드, 보험사, 연기금, 증권화기구, 사모대출펀드 등 다양한 기관을 통해 이뤄진다. 이 영역을 넓게 ‘비은행 금융중개(NBFI)’라고 부른다. 은행이 아닌 곳에서도 돈을 모으고 빌려주며 위험을 나눈다는 뜻이다.

비은행 금융을 전부 ‘그림자금융’이라고 부르며 위험한 곳으로 취급하면 현실을 잘못 보게 된다. 보험과 연기금은 장기자금을 공급하고, 투자펀드는 기업의 자금조달을 돕고, 헤지펀드는 평상시에 거래 상대방이 돼 시장 유동성을 높이기도 한다. 단지 은행의 예금·대출이라는 익숙한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금융의 위험이 어느 곳에 쌓이는지 보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금융안정위원회(FSB)가 2025년 12월 발표한 글로벌 비은행 금융중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조사대상 29개 관할권의 비은행 금융자산은 256조8,000억 달러로 전년보다 9.4% 증가했다. 전체 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0%다. 다만 이 통계에는 보험사와 연기금 등 폭넓은 비은행 기관이 포함되므로 256조8,000억 달러 전부가 고위험 사모대출이나 고레버리지 투자라는 뜻은 아니다.

FSB는 이 가운데 은행과 유사한 금융안정 위험을 일으킬 수 있는 신용중개 활동을 별도로 좁혀 분류한다. 2024년 말 해당 ‘협의의 비은행 금융중개’ 자산은 76조3,000억 달러였다. 넓은 범위와 좁은 범위를 구분해야 시장의 크기와 위험의 성격을 혼동하지 않는다.

연결망은 겉으로 보이는 이름보다 실제 거래를 따라가야 드러난다. 비은행 펀드가 기업에 대출을 한다. 그 펀드에 투자한 보험사가 보험료를 운용한다. 펀드는 필요할 때 은행 신용한도를 이용한다. 기업은 다시 은행의 운전자금 한도에 의존할 수 있다. 은행의 대출 장부 밖에서 시작된 거래가 은행으로 되돌아올 경로가 여러 개 만들어진다.

사모대출은 은행을 대체했을까, 새로운 통로를 열었을까

사모대출(private credit)은 공개적으로 거래되는 회사채보다 상대적으로 협상에 의한 대출 약정의 성격이 강하다. 은행의 전통적인 기업대출 외에 자산운용사 등이 조성한 펀드가 기업에 직접 자금을 공급한다. 기업은 만기나 상환조건을 사업에 맞춰 조정할 수 있고, 투자자는 높은 금리와 장기 투자 기회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계약이 공개시장 가격표에 매일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은 장점이자 위험이다. 상장 주식처럼 시세가 수시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차주의 영업과 상환 능력은 변한다. 투자자에게 대출 가치를 평가하는 시점과 실제 현금이 회수되는 시점 사이의 거리가 길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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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B는 2026년 5월 보고서에서 2024년 말 세계 사모대출 시장을 약 1조5,000억~2조 달러로 추정했다. 집계 정의와 데이터가 불완전하므로 하나의 확정값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같은 보고서는 사모대출의 맞춤형 기업금융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차주 신용도, 가치평가의 불투명성, 펀드 차입구조, 은행·보험·사모펀드와의 연결을 감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보고서에 나타난 금융회사 간 직접 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FSB 회원권역의 확보 가능한 자료에서 은행이 사모대출펀드에 제공한 사용·미사용 신용한도는 약 2,200억 달러였다. 이는 포착된 직접 한도를 의미하며 모든 간접 익스포저나 최종 손실 예상액을 합산한 숫자는 아니다.

어떤 기업의 사업 전망이 나빠졌다고 생각해 보자. 공개 회사채는 거래가격에 위험이 비교적 빨리 반영될 수 있다. 사모대출은 재평가가 늦어질 수 있고, 그동안 이자 지급 유예나 만기 연장 같은 조건 조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 모두 부실을 은폐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손실을 언제 어떻게 인식할지, 누가 자금을 더 공급할지, 펀드 투자자의 환매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중요해진다.

한 단계 더 진행되면 사모대출펀드가 은행의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은행은 자체 위험한도를 관리하기 위해 대출과 신용공여를 조정할 수 있다. 차주는 다시 공급업체의 결제조건을 늦추거나 설비투자를 보류할 수 있다. 이 경로는 가능한 스트레스 전파 시나리오이지 지금 모든 펀드와 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확정된 사건은 아니다.

국채를 사는 헤지펀드가 왜 국채시장을 더 흔들 수 있나

한편 미국 국채시장에는 사모대출과 다른 연결고리가 있다. 일부 헤지펀드는 현물 국채와 국채선물 사이의 작은 가격 차이를 활용하는 ‘베이시스 거래’를 한다. 현물 국채를 매입하고 선물시장에서 반대 포지션을 취하면서 가격 차이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수익을 기대한다. 현물 국채 매입 자금의 상당 부분을 레포시장에서 빌릴 수 있다.

작은 가격 차이에서 수익을 내려면 거래 규모를 키우고 차입을 활용하기 쉽다. 평소에는 국채 현물과 선물 사이의 가격 관계를 안정시키는 기능도 있지만, 자금조달 비용이 급등하거나 추가 담보가 필요해지면 많은 투자자가 동시에 포지션을 줄여야 할 수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가 2026년 6월 발표한 연구는 조사된 헤지펀드의 미국 국채 매수 포지션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금조달·파생상품 구조를 분석했다. 연구에서 베이시스 거래로 분류된 국채 포지션은 약 8,300억 달러로 추정됐다. 이것은 연구가 분류한 특정 포지션의 규모이지 미국 국채시장에서 손실이 그만큼 발생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독자가 붙잡아야 할 장면은 복잡한 거래기법이 아니다. 평소 쉽게 거래되는 국채가 어느 날 갑자기 대량으로 매도되고, 그 국채를 받아줄 금융기관도 위험을 줄이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금리는 더 빠르게 움직이고 다른 채권과 대출의 기준금리까지 영향을 받는다. 국채가 안전자산이라는 사실과 국채시장이 언제나 부드럽게 거래된다는 믿음은 같지 않다.

돈줄이 조이면 철강산업에는 주가보다 먼저 결제조건이 바뀐다

국제 금융의 불안이 한국의 철강업체에 도착하는 경로는 단순히 주가나 환율 변동에 그치지 않는다. 철강사와 제강사의 원료 구매, 재압연사의 반제품 확보, 유통업체의 재고금융, 수요업체의 시설투자는 서로 다른 금융계약에 의존하지만 결국 현금과 신용이라는 같은 토대에 서 있다.

예를 들어 수요산업의 한 업체가 생산설비를 확장하기 위해 외부자금을 조달하려던 상황을 생각해 보자.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거나 대출약정이 미뤄지면 공장 건설 일정부터 늦춰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착공에 맞춰 공급하려던 형강과 후판, 설비 제작에 필요한 열연과 가공품의 발주도 뒤로 이동한다. 이는 특정 기업의 실제 사례가 아니라 가능한 전달경로를 설명한 것이다.

유통 단계의 충격은 더 빠를 수 있다. 거래처가 결제를 30일 늦추면 같은 재고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운전자금이 늘어난다. 은행이 담보인정비율을 낮추거나 단기 한도를 줄이면 매출이 줄지 않았더라도 현금흐름이 경색될 수 있다. 팔 수 있는 재고가 있다는 사실과 오늘 만기 도래한 채무를 갚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르다.

철강업계가 확인해야 할 위험지표도 달라진다. 글로벌 자산시장이 흔들리면 시황가격과 주가뿐 아니라 국내 기업어음·회사채 스프레드, 주요 수요산업의 프로젝트 금융 진행, 무역금융 이용 가능성, 외상매출금 회수 기간, 재고회전일수, 수출입 신용장 조건을 같이 봐야 한다. 대형 투자계획 발표보다 실제 집행과 발주 전환 여부가 중요하다는 점은 전날 AI 투자 이야기와 연결된다.

중요한 것은 금융위기를 단정하지 않고 취약한 연결고리를 미리 알아두는 일이다. FSB의 통계상 비은행 금융이 커졌다는 사실만으로 위기가 임박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 위기로 번질지는 차입 수준, 담보 요구, 환매 조건, 은행의 손실흡수능력, 중앙은행의 시장안정 조치, 실물기업의 현금창출력 등이 함께 결정한다.

숫자로 확인한 금융 연결망의 크기

기준구분공식 수치해석상의 주의점
2024년 말 / 2025.12 발표비은행 금융중개 전체 자산256.8조 달러 / 금융자산 51.0%보험·연기금 포함한 광의 범위
2024년 말 / 2025.12 발표금융안정 위험 협의의 NBFI76.3조 달러FSB 분류상 은행 유사 취약 신용중개
2024년 말 / 2026.05 평가세계 사모대출 시장 규모약 1.5~2.0조 달러정의·통계 차이를 반영한 추정 범위
2026.05 보고서은행의 사모대출펀드 신용한도확인 가능한 약 2,200억 달러사용·미사용 한도 포함, 전체 간접 노출 아님
2026.06 연준 분석헤지펀드 국채 베이시스 거래 노출약 8,300억 달러연구상 분류된 포지션 규모, 손실액 아님
2022.09~10 영국영란은행 국채시장 안정 매입193억 파운드 / 13일당시 조치의 실제 매입 규모

자료: FSB, 미 연방준비제도, 영란은행. 서로 다른 조사 범위·기준일·통화의 지표이므로 합산하거나 동일 위험금액으로 비교하지 않는다.

화면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기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2026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금융안정보고서는 AI 관련 자산가격 조정, 국채금리 급등, 사이버 충격을 주요 불안 촉발요인으로 지목했다. 동시에 비은행 금융의 레버리지, 사모대출의 유동성 위험, 보험사와 연기금의 자금 만기 불일치가 충격을 확대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은행시스템이 전반적으로 회복력을 갖췄다는 평가와 이런 취약성에 대한 경고는 모순이 아니다.

영국의 2022년 연금시장 사태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문제는 가격이 내려갔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가격 하락을 견디기 전에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기관들이 동시에 움직였다는 점이다. 위기는 때로 가장 위험한 자산에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안전하다’고 여겨 같은 방식으로 보유한 자산의 거래 구조에서 시작된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것은 막기 어렵더라도, 기업과 가계는 그 충격을 맞기 전에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제5부에서는 위기가 실물경제와 고용, 철강 수요에 도착하는 경로를 되짚고, 다음 위기를 견디기 위해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검증자료와 원문

※ 사실관계와 통계 기준일은 각 기관의 발표자료를 따른다. 미래의 자금 경색·철강 수요 영향에 관한 조건부 설명은 편집실의 분석이며 특정 기업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재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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