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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제조·유통 현장의 영업 전략 11] 구매는 싸게 샀는데 영업은 팔 곳이 없다 — 철강회사의 내부 전쟁을 끝내는 법

[철강 제조·유통 현장의 영업 전략 11] 구매는 싸게 샀는데 영업은 팔 곳이 없다 — 철강회사의 내부 전쟁을 끝내는 법


대량 구매는 좋은 결정처럼 보이고, 주문을 놓치지 않는 영업도 좋은 결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부서의 정답을 한 회사의 손익계산서에 겹쳐 놓으면 손실이 생길 수 있다. 철강 유통의 내부 갈등은 누가 더 유능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각 부서가 서로 다른 시간표와 위험을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다음 장면은 실제 특정 업체에 대한 취재나 관계자 발언이 아닌, 현장에 흔한 의사결정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구성한 가상 사례다. 월초의 한 코일센터. 구매 담당자는 공급처가 제시한 대량발주 할인 조건을 가져왔고, 영업 담당자는 확정 주문서가 아직 절반 정도에 그친다고 지적한다. 같은 회의실에 앉아 있지만 구매의 서류에는 ‘매입단가’, 영업의 서류에는 ‘실제 출고 가능 물량’이 가장 크게 적혀 있다.


왜 구매는 싸게 사고 싶고, 영업은 나중에 사려 하는가

구매 부서는 생산 리드타임, 배정 물량, 규격별 확보 가능성, 제조사 월간 출하정책을 먼저 본다. 오늘 놓친 코일이 다음 달 고객의 생산라인을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업 부서는 고객이 제시하는 실제 인수일, 가격 재협상 여지, 유효기간이 짧은 견적, 미확정 발주를 먼저 본다. 확보한 코일이 창고에 도착했다고 해서 매출과 현금이 함께 들어오지는 않는다.


문제는 각 부서의 판단이 개별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데 있다. 구매팀은 장기 안정공급과 할인 단가를 성과로 보고, 영업팀은 납기 대응과 판매 마진을 성과로 본다. 반면 재고보유기간, 가공·출고에 필요한 운전자금, 매출채권 회수까지 포함한 회사의 현금흐름은 조직 사이의 틈에 놓이기 쉽다.


특히 판재류 유통에서는 같은 열연 코일이라도 강종, 두께, 폭, 표면 상태, 원소재 중량 및 절단 계획에 따라 고객 전환 가능성이 달라진다. 철근과 일반 형강의 표준규격 판매처럼 재배치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품목도 있지만, 규격이 특수할수록 ‘총량 400톤’이라는 재고 숫자는 판매 가능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가상 손익 계산서 — 단가 1만4천원을 아낀 뒤 무슨 일이 벌어졌나

가상의 유통사가 앞으로 60일 동안 확정된 열연강판 수요 500mt를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판매가격은 740,000원/mt, 실제 출고되는 물량에 적용하는 운송·가공 등 변동비는 18,000원/mt이다. 공급업체는 500mt만 발주하면 710,000원/mt, 900mt를 일괄 발주하면 696,000원/mt를 제안한다. 이는 실제 시장가격을 의미하지 않는다.

구분A안: 확인 수요 중심B안: 대량 할인 구매
발주량500mt900mt
매입단가710,000원/mt696,000원/mt
최초 매입대금3억5,500만원6억2,640만원
60일 내 확정 출고500mt500mt
출고 후 잔여 재고0mt400mt
출고 500mt의 기여이익*600만원1,300만원
추가 재고 400mt의 매입원가없음2억7,840만원

* 기여이익은 설명을 위해 (판매단가-매입단가-출고 변동비)×출고량만 계산한 값이다. 인건비·임차료·세금·일반관리비 등은 포함하지 않았고, 실제 회계상 매출총이익과 동일하지 않다.


회계 장부에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B안의 ‘판매된 500mt에 대한 700만원의 추가 이익’이다. 다만 900mt 전체의 14,000원 할인액인 1,260만원을 즉시 확정이익으로 적어서는 안 된다. 아직 팔리지 않은 400mt에는 대금 지급과 보관, 가격변동의 위험이 남아 있으며, 회계상 재고자산 원가와 실제 매출원가 인식도 구분된다.


여기에 확정되지 않은 추가 400mt가 이후 90일 동안 체류한다고 가정해 보자. 추가 재고 400mt의 취득원가 2억7,840만원에 연 6%의 자금조달비용을 단순 적용하면 90일 금융비용은 약 412만원이다. 보관비를 5,000원/mt·월로 가정하면 3개월 600만원이 발생한다. 가격이 10,000원/mt 떨어진 상태에서 잔여재고 전량을 처분한다는 별도 하락 시나리오에서는 약 400만원의 가격손실이 생긴다.


B안의 추가 재고 400mt 관련 항목설명용 금액산식
매입할인으로 늘어난 500mt 출고 기여이익+700만원500mt×14,000원
90일 추가 금융비용-약 412만원400×696,000×6%×90/365
3개월 추가 보관비-600만원400×5,000×3
하락 시나리오의 가격손실-400만원400×10,000
비교상 잔여 차이(하락 시나리오)약 -712만원700-412-600-400

이 표는 투자손익 예측이 아니라 조건부 비교다. 400mt를 더 빨리 팔거나 시세가 유지·상승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또한 전액 차입인지, 출고시점이 언제인지, 운임·보관료가 어느 재고에 귀속되는지에 따라 실제 원가가 바뀐다. 그럼에도 단가 14,000원 할인이라는 한 숫자가 회사에 유리하다는 결론으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구매와 영업이 서로 다른 시장을 보고 있으면 재고는 쌓인다

상승장에서는 영업팀이 주문확보를 주장하고 구매팀이 공급 부족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가수요나 중복 발주를 확정 주문과 혼동하면 적정 재고보다 많은 물량을 선매입하기 쉽다. 가격이 상승하는 동안에는 그 판단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다가 고객이 인수를 늦추거나 가격이 꺾이는 순간 창고가 위험을 떠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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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하락장에서는 구매팀이 추가 매입을 늦추려 하고, 영업팀이 납기를 맞추기 위한 최소 재고를 요구할 수 있다. 매입 보류가 무조건 위험 축소를 뜻하지는 않는다. 특수 폭·강종처럼 재조달 시간이 긴 품목에서 고객라인이 멈추면 거래처 자체를 잃는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수요 500mt라도 표준규격 열연의 유통재고인지, 자동차 부품사에 품질승인을 받은 냉연·도금 소재인지, 후판 절단 프로젝트용 주문물량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져야 한다. 표준재는 회전율과 시가 변동에 민감하고, 인증재는 대체 공급의 어려움과 납품 실패 비용이 중요하다. 프로젝트성 후판은 절단도면과 잔재 처리까지 함께 결정해야 한다.


부서 간 ‘가격회의’를 ‘하나의 수요·재고·현금 회의’로 바꾸는 방법

공급망 관리 전문기관 ASCM은 S&OP(Sales and Operations Planning)를 수요예측·판매·공급·재무를 연결해 하나의 계획으로 조율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철강 유통사가 거창한 시스템부터 도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매주 한 장의 합의표에서 확정 주문, 가능성이 있는 문의, 규격별 재고, 입고 예정, 매출채권과 여신잔액을 같은 기준일로 맞추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첫째, 수요를 ‘계약·발주서가 확정된 물량’, ‘고객 계획은 확인됐지만 가격·납기가 미확정인 물량’, ‘구두 문의 또는 시장 반응’으로 나눈다. 둘째, 가공 후 바로 출고할 수 있는 재고와 규격 전환·잔재 손실이 필요한 재고를 분리한다. 셋째, 보충 리드타임과 필수 안전재고를 고객군·강종별로 따로 둔다. 넷째, 구매안은 공급단가가 아니라 추가 재고의 체류기간·매출원가·현금유출까지 비교한다.


다섯째, 재무팀은 재고자산 평가와 자금조달 한도를 따로 제시한다. IAS 2는 재고자산을 취득원가와 순실현가능가치 중 낮은 금액으로 측정하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시가가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품목의 손실이 동일하게 확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회수 가능한 금액이 장부원가를 밑도는 재고를 ‘언젠가 팔릴 것’이라고만 볼 수 없다. 실무의 추정과 실제 회계처리는 회사의 회계정책과 검토를 따라야 한다.


여섯째, 판매 예정가격은 고객 제시가격만으로 확정하지 않는다. 가공·운임·포장비, 신용기간, 클레임 가능성, 납기변경 조건을 연결해야 같은 740,000원 판매라도 실질 이익이 드러난다. 일곱째, 부서별 절감·매출 목표보다 ‘확정 물량 충족률, 체류 90일 이상 재고, 수금일수, 규격별 기여이익, 현금회수 전망’을 공동 지표로 둔다.


누가 의사결정권을 갖는가 — 책임을 분명히 하면 갈등은 줄어든다

대량 할인 제안은 구매팀이 수집하되, 수요확정률과 출고조건은 영업팀이 검증하고, 매입 가능한 운전자금과 재고 위험은 재무·관리팀이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부서 간 의견이 다를 때는 최고 책임자가 특정 팀의 직관을 선택하기보다 ‘어떤 추가 수요가 확인되면 일괄매입, 어느 수준 이하이면 단계매입’이라는 조건부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예컨대 본 사례에서 추가 400mt 중 상당량의 납품계약이 새로 체결되고 보관기간이 짧아졌다면 B안의 타당성이 커진다. 반대로 추가 물량의 강종·폭·도착일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공급업체와 물량 옵션 또는 분할입고를 협상하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수량 할인과 공급안정이라는 이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출고 불확실성의 비용을 통제하는 접근이다.


영업이 구매를 이기는 조직도, 구매가 영업을 이기는 조직도 지속하기 어렵다. 철강 유통업의 경쟁력은 어느 부서가 더 싼 가격을 맞혔는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장정보를 한 회사의 현금과 납기 약속으로 바꾸는 능력에서 나온다. 오늘의 ‘싼 코일’이 다음 분기의 장기재고로 남지 않으려면, 가격보다 먼저 구매할 이유와 팔릴 시점을 묻는 것이 출발점이다.


자료 및 원칙: ASCM, Sales and Operations Planning(S&OP); IFRS Foundation, IAS 2 Inventories. 본문의 거래가격·물량·금리·보관료는 시장 실거래자료가 아닌 설명용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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