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적한 철강재에 녹이 생겼다는 통보가 도착하는 순간, 트레이더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배상 약속도 책임 부인도 아니다. 손상된 제품이 언제, 어디서, 어떤 상태였는지 확인할 자료를 확보하는 일이다. 같은 녹이라도 선적 전 보관 중 발생했는지, 선적·하역 과정에서 생겼는지, 도착항에서 부적절하게 보관하면서 확산됐는지에 따라 계약상 책임과 실제 회수 가능액은 달라진다.
가령 해외 바이어가 후판 160톤을 인수한 뒤 이 가운데 40톤에서 부식과 가장자리 찍힘을 발견했다고 하자. 발주서에는 제품 규격과 표면 상태가 명시돼 있고, 계약조건은 CIF 도착항, Incoterms® 2020이다. 구매자는 전량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판매자는 위험이 선적 시 이전됐다고 주장하며, 선사는 선적 당시 이미 녹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는 실재 거래에 대한 보도가 아니라 책임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가상 사례다.
CIF로 선적했다고 판매자의 모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제상업회의소(ICC)의 Incoterms® 2020에서 FOB·CFR·CIF는 기본적으로 본선에 적재된 시점에 물품 멸실·손상 위험이 매수인에게 이전되는 해상운송 규칙이다. CFR과 CIF에서는 매도인이 목적항까지 운송계약과 비용을 부담하지만, 운임 지급과 위험 이전은 별개의 문제다. CIF에서 매도인이 구입해야 할 기본 적하보험은 Institute Cargo Clauses(C) 수준의 최소 담보이며, 모든 표면 부식이나 하역 손상을 무조건 보상하는 보험이 아니다.
더 중요한 구분은 '운송 중 우발 손해의 위험 부담'과 '계약에 적합한 물품을 공급할 의무'다. CISG가 해당 계약에 적용될 경우 제35조는 물품 적합성, 제36조는 위험 이전 시 존재한 부적합에 관한 매도인의 책임을 규정한다. 따라서 본선 적재 전에 이미 계약 기준을 벗어난 결함이 있었다면 단순히 CIF라는 이유만으로 매도인 책임이 자동 소멸하지 않는다. 반대로 선적 후 외력으로 발생한 손상은 선사·보험자·매수인 간 책임 및 담보 범위를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 구분 | 확인할 기준 | 트레이더의 판단 |
|---|---|---|
| 판매계약상의 적합성 | 강종·두께·치수·표면 품질·포장·검사 합의 | 출항 이전부터 부적합했는지 검토 |
| Incoterms® 2020 위험 이전 | FOB/CFR/CIF는 원칙적으로 선적항 본선 적재 시점 | 운송 중 사고와 선적 전 결함을 혼동하지 않음 |
| 적하보험의 실제 담보 | CIF 기본 조건은 통상 ICC(C) 최소 담보 | 보험증권, 특약, 면책, 보험금청구권자 확인 |
| 운송인 책임과 증거 | 선적 전 검정, B/L 외관 기재, 적부·하역·항해 기록 | 손상 발생 시점과 원인에 관한 입증자료 확보 |
선적 전 녹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으면 왜 분쟁이 커지나
철강 제품의 녹은 육안상 유사해 보여도 원인이 같지 않다. 제철소 출하 직후의 표면 상태, 야적장의 빗물 노출, 선적 전 대기, 선창 내 결로, 해수·우수 침입, 양륙 중 수침 등 여러 가능성이 있다. 스웨덴 P&I 클럽 Skuld는 철강 선적 전 검정(Pre-Loading Steel Survey)을 통해 녹의 정도, 피팅(pitting)과 같은 표면 상태를 기록하고, 선하증권(B/L)상 외관 기재가 실물과 합치되는지 확인할 것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는 후판의 패킹 번호별 전면·절단면·모서리 사진, 적재 위치, 검사 일자, 하역 전후 상태, 선창 해치 관리기록, 손상부의 오염물 및 수분 시료, 판매계약서의 품질 조항, 제철소 검사증명서(MTC)를 시간순으로 묶어야 한다. 특히 현장에서 녹을 제거하거나 제품을 가공·재판매하면 손해 확대는 줄일 수 있지만 최초 손상 상태의 증명이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합동검정과 증거 보전의 순서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클레임 통지의 시계는 발견 순간부터 돈다
CISG 제38조는 사정상 실행 가능한 한 짧은 기간 내 물품을 검사하도록 요구한다. 제39조는 부적합을 발견했거나 발견했어야 하는 때부터 합리적인 기간 안에 그 성격을 특정해 매도인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한다. 2년이라는 제39조 제2항의 장기 제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훨씬 이른 '합리적인 기간' 요건과 계약의 별도 통지·보증 조건, 운송계약상의 통지 의무를 함께 점검해야 한다.
따라서 바이어의 짧은 메시지를 받았을 때 '품질 담당자가 다음 주에 확인하겠다'는 답신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제, 어떤 포장단위에서, 전체 몇 톤 중 몇 톤에, 어떤 유형의 하자가 발생했는지를 명시하고, 독립 검정 요청과 자료 보존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다만 특정 국가 법령이나 운송계약에서 정한 통지기한을 모든 거래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160톤 중 40톤 손상, 전량 할인 요구가 합리적인가
트레이더는 청구금액과 인정 가능한 손해액을 구분해야 한다. 아래는 현장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가상의 금액 예시다. 실제 철강 가격이나 적하보험 보상 기준, 특정 거래의 손해배상 판정이 아니며 세금·관세·법률비용 등은 반영하지 않았다.
| 가상 거래·손해 항목 | 계산 가정 | 산식·금액 |
|---|---|---|
| 판매 물량과 계약 단가 | 후판 160metric ton × 680USD/metric ton | 총 계약가액 USD 108,800 |
| 손상 주장 물량 | 40metric ton(총량의 25%) | 손상 범위 독립 확인 필요 |
| 품질 회복·재작업 | 40metric ton × USD 25/metric ton | USD 1,000 |
| 등급 하락에 따른 가격 차이 | 40metric ton × USD 70/metric ton | USD 2,800 |
| 독립 검정료 | 사례 가정 | USD 1,200 |
| 추가 보관·분리 비용 | 사례 가정 | USD 1,600 |
| 잠정 직접손해 합계 | 중복 항목·구제 가능성 확인 전 | USD 6,600 |
이 가정에서는 160톤 전체에 무차별적인 할인율을 적용하기보다 피해 범위를 분리하고, 재작업과 재판매 가격 차이의 중복 계상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제철소가 포장을 잘못했는지, 운송인이 선창의 습기 관리를 소홀히 했는지, 도착항 체화 중 손상이 악화됐는지에 따라 손실을 부담할 주체와 회수 가능한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 보험금 청구 가능액도 계약상 자기부담금·면책·증빙 요건에 의해 달라진다.
수출자·바이어·선사·보험자가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진다
철강사·제강사 또는 재압연사는 출하 당시 물품의 규격 적합성과 포장·검사 이력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트레이더는 서로 다른 당사자 사이의 계약과 통지, 합동검정 일정을 조정한다. 바이어는 도착 즉시 손상 물량을 분리하고 사용·가공 가능성과 불량의 범위를 확인한다. 선사·P&I 클럽은 선적 전 외관, 선창 상태 및 운송 중 관리책임을 분석한다. 보험자는 해당 위험이 보험담보에 포함되고 손해가 입증됐는지를 본다.
오해하기 쉬운 것은 '누가 위험을 부담했는지'를 확정하면 곧바로 '누가 바이어에게 지급하는지'까지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판매계약의 준거법, 책임 제한과 구제조항, 운송계약, 보험계약이 서로 다르다. 매도인, 운송인, 보험자가 모두 책임을 다투는 경우 트레이더가 초기 증거를 잃으면 어느 경로로도 회수하기 어려워진다.
합의는 책임 인정보다 먼저 손해 확대를 막는 구조로 설계한다
실무적으로는 초기 회신에 손상 신고의 접수, 합동검정 요구, 사진·포장재·시료 보관, 제품 사용·재가공 전 사전 협의, 양 당사자의 권리 유보를 명시하는 편이 안전하다. 결함 원인이 확정되기 전 임의로 '전량 전액 배상' 또는 '우리 책임 없음'이라고 단정하면 이후 보험·운송인 구상이나 고객과의 협상이 어려워질 수 있다.
감정 결과 후에는 실제 손상 수량, 재작업 후 사용 가능량, 대체 납품 가능성, 할인 정산, 보관·검정료, 회수 가능한 보험금과 구상금, 고객 생산라인 중단의 인과관계를 분리해 판단해야 한다. 협상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최종 합의서에 적용 범위, 지급 시점, 잔여 채권, 권리 유보 및 동일 손해 중복 청구 금지 사항을 명확히 남기는 일이다.
철강 트레이딩의 경쟁력은 클레임을 발생시키지 않는 것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시간표와 증거, 계약과 보험을 연결해 손실을 줄이는 능력이 거래의 신용을 결정한다.
출처·참고: ICC Academy, Incoterms® 2020 CFR/CIF; CISG 전문, 제35·36·38·39조; Skuld, Steel Cargo Pre-Loading Surveys; UK P&I Club, Pre-load Steel Surveys. 법적 결론은 계약과 적용 법률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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