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실제 철강시장 자료를 모티프로 창작한 픽션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일부 기업·사건은 허구이며, 실제 기업·단체·사건과 관련이 없다. 실제 기업명은 공개된 시장정보와 가격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범위에서만 사용했다.
새벽에 켜진 것은 현장 조명보다 무전기였다. 철근을 실은 트럭이 들어오기로 한 시간에 검수반장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는 물건이 늦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늘 들어오기로 한 철근의 강종과 규격이 두 장의 종이에 다르게 적혀 있다고 했다. 현장 자재담당 박주임은 사무실에서 안전화를 꺼내 신다가 멈췄다. 납품이 늦는 일은 가끔 있었다. 그러나 같은 차를 기다리면서 서로 다른 물건을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저절로 풀리지 않았다.

공사가 재개된 도심 복합시설 현장은 굴착이 끝난 구역과 배근이 시작된 구역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가공 철근을 기다리는 작업반 뒤로 펌프카가 비켜 서 있었고, 바닥에는 비닐로 싸인 도면이 축축하게 눌어붙었다. 박주임은 자재 반입표의 날짜부터 확인했다. 날짜는 맞았다. 총량도 큰 차이가 없었다. 문제는 강종과 길이, 그리고 어느 구역에 먼저 쓸 것인지였다. 공종별 사용 순서가 바뀌자 전날까지 맞던 출고표가 오늘의 작업 계획과 어긋났다.
“기사님 차는 어디까지 왔습니까?” 박주임이 물었다. “배차 자체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철강 유통사 출하담당 임대리가 대답했다. “창고에 재고가 없습니까?” “재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승인한 규격과 바로 뽑아 실을 수 있는 묶음이 같지 않습니다.” 그 말이 현장을 조용하게 했다. 자재가 있다는 말과 오늘 쓸 수 있다는 말 사이에 트럭 한 대보다 긴 거리가 있었다.
창고의 숫자는 한꺼번에 움직이지 않았다
서쪽 유통창고에서는 아침부터 이동식 조명이 켜져 있었다. 유통사 물류반장 노기사는 철근 묶음 끝의 표찰을 하나씩 읽으면서 바닥에 분필 선을 그었다. 표찰이 오래됐기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에 등록된 재고와 실제 출하 가능한 묶음을 다시 나눠야 했기 때문이다. 무게가 같다고 대체할 수 있는 자재가 아니었다. 강종, 직경, 절단 여부, 발주서와 검수서가 일치해야 작업반이 안심하고 쓸 수 있었다.
영업팀의 정과장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전체 재고는 충분하다고 어제 보고받았습니다.” 노기사는 손에 묻은 녹 가루를 털었다. “전체라는 말이 위험합니다. 현장이 원하는 건 전체가 아니라 오늘 오전에 사용 승인된 바로 그 묶음입니다.” “일단 국산부터 빼면 안 됩니까?” “가능한 물량과 아직 묶여 있는 물량을 섞어 놓으면, 다음 차에서 같은 문제가 다시 생깁니다.”
바깥에서는 트럭 운전자가 시계를 보고 있었다. 첫 차가 늦어지면 두 번째 배차도 밀리고, 하역 공간을 비워 두기로 한 약속도 흔들린다. 정과장은 노기사와 함께 적재 계획을 다시 짰다. 입고 장부에는 수량 하나로 합쳐져 있던 철근을, 검수 통과 물량과 추가 확인 물량, 현장과 협의가 필요한 물량으로 구분했다. 재고가 갑자기 늘거나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오늘 쓸 수 있다는 말의 범위를 줄여 잡은 것이다.
“이걸 그대로 영업부장에게 올리면 판매 가능량이 줄었다고 할 텐데요.” 출하담당 임대리가 말했다. “그래도 올리세요.” 정과장이 답했다. “재고가 많다고 약속하고 나서 현장에서 반품시키는 것보다 낫습니다.” 노기사는 빈 트럭 적재함을 한 번 두드렸다. “여기 실리는 건 쇳덩이가 아니라 우리가 확인한 정보여야 합니다.”
싼 가격의 도착지는 같지 않았다
본사 회계팀의 오전 회의는 의외로 짧았다. 재무담당 윤대리는 거래처별 미수금을 확인하고 있었다. 건설현장에 납품한 자재는 검수서가 접수돼야 매출채권 정리도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영업부서에서는 급한 현장을 살리기 위해 수입 철근을 먼저 제안했다. 그러나 회계팀이 보기에는 공장 출고가, 수도권 도착도 현금가, 여신을 적용한 납품가가 한 칸에서 비교되고 있었다.
“일본산 현금가가 더 낮으니 이쪽으로 채우자는 겁니까?” 윤대리가 물었다. 정과장은 잠시 종이를 돌려 보았다. “가격 차이는 분명합니다.” “조건도 같습니까?” “같지 않습니다. 수입재는 도착 조건이고, 우리는 현장까지의 재운송과 검수 일정을 다시 봐야 합니다.” “그럼 낮은 숫자를 그대로 절감액이라고 쓰면 안 됩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시장에서는 국산 SD400 D10 공장 출고 거래가격이 톤당 82만5천~83만원 수준으로 제시되고 있었다. 일본산과 중국산은 수도권 도착도 즉시 현금 거래 기준 각각 78만5천원과 78만원 정도였다. 국산 가격은 전주보다 하락했으나 수입재는 보합이었다. 하지만 그 표에서 계산된 단순 가격 차이가 창고에서 현장까지 발생할 모든 비용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검수서류, 재운송, 대금 회수 시점, 현장이 승인한 자재의 범위가 각각 달랐다.
윤대리는 영업사원에게 현장 담당자의 서명을 받은 규격 대조표를 먼저 요구했다. “재고를 팔기 위해 서류를 맞추는 건지, 서류에 맞는 재고를 찾는 건지 순서를 정합시다.” 정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금이 급한 유통업체라면 조금 낮은 가격이라도 매출을 만들 유혹이 크다. 반대로 납품하고도 검수에서 지체되면 장부상 매출과 실제 들어오는 현금의 거리는 더 멀어질 수 있다. 숫자가 작은 견적서가 언제나 가벼운 선택은 아니었다.
현장이 필요로 한 것은 하루의 순서였다
점심을 지나 박주임의 전화에는 현장 공무담당과 가공업체 실장이 함께 들어왔다.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가격이 아니라 작업의 순서였다. 오전에 쓰려던 구간을 미루면 어느 공정이 영향을 받는지, 먼저 진행할 수 있는 다른 구역은 어디인지 확인했다. 가공업체는 잘라 놓은 자재를 무턱대고 현장에 넣을 수 없다고 했다. 가공표가 맞아도 현장 구조도면과 승인 내역이 달라졌다면 다시 대조해야 했다.
“오늘 다 받지 않으면 작업이 멈춥니다.” 현장 공무담당이 말했다. 박주임이 답했다. “다 받는 것과 필요한 것을 제때 받는 것은 다릅니다. 검수 가능한 것부터 나눠 받겠습니다.” 가공업체 실장이 질문을 보탰다. “그럼 변경 구역 물량은 내일 확정하는 겁니까?” “확정되지 않은 것을 오늘 차에 섞지는 않겠습니다.” 전화가 잠깐 끊기듯 조용해졌다. 누구도 좋은 조건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지킬 수 있는 약속의 모양이 잡혔다.
정과장은 창고로 돌아가 노기사와 출하순서를 다시 확인했다. 출고 예정인 철근에는 먼저 갈 현장의 작업 구역을 붙여 구분했다. 재고를 새로 사들이지는 않았다. 필요한 규격과 실제 확보된 규격을 맞춰 출하를 줄이고, 나머지는 검수·가공 확인 뒤 후속 차량에 배정하기로 했다. 매출을 하루라도 앞당기려던 영업팀으로서는 선뜻 반기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현장 반입 후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물량을 억지로 싣지 않기로 했다.
“오늘 숫자가 작아 보일 겁니다.” 정과장이 윤대리에게 말했다. “그렇게 보이도록 적는 것이 낫습니다.” 윤대리가 답했다. “검수되지 않은 매출을 먼저 크게 만들어 놓으면 다음 주에는 그 차이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들은 납품 계획서에 가격뿐 아니라 각 물량의 기준 조건과 확인 담당자를 별도 메모했다. 누구도 완벽한 해결책을 얻지 못했지만, 어디에서 다시 확인할지는 분명해졌다.
검수등이 꺼지기 전
해가 기울자 창고의 노란 조명이 철근 끝을 따라 길게 번졌다. 첫 차량이 천천히 움직였고 노기사는 적재함 옆에서 마지막으로 표찰과 송장을 맞췄다. 세상이 보기에는 원래 있어야 할 절차였다. 하지만 오전의 창고에서는 모두가 한 번쯤 그 절차를 건너뛰고 싶어 했다. 가격이 낮아지고 재고가 많은 시기에 기다림은 비용처럼 보인다. 그날 노기사는 기다리는 몇 분이 어쩌면 반품과 신용의 몇 달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내도 됩니까?” 운전자가 물었다. 노기사가 차량 옆에서 손을 들었다. “이 묶음은 보냅니다. 아직 확인 안 된 건 남깁니다.” 멀어지는 후미등을 보며 임대리가 말했다. “다 팔 수 있다고 적힌 재고인데 결국 일부만 실었네요.” 노기사는 운전자의 뒷모습보다 창고 입구의 빈 공간을 오래 바라봤다. “오늘 팔지 않은 철근도 내일 팔아야지. 그때는 누구에게 어떤 용도로 가는지 알고 팔면 됩니다.”
밤이 가까워도 검수등 하나는 꺼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계약서에 조금 덜 큰 매출을 적었고 누군가는 현장 작업 순서를 다시 그렸다. 철근 가격이 내려간 사실은 시장의 숫자에 남는다. 그러나 거래가 무사히 완성되는지는 강종을 읽는 눈과 서명을 기다리는 인내, 그리고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정확히 알리는 태도에 달려 있었다. 늦게 출발한 첫 차량의 적재함은 가벼워졌지만, 약속은 전날보다 무거워졌다.
그날의 가격
| 품목 | 가격 | 주간 변동 |
|---|---|---|
| 국산 철근 SD400 D10 공장 출고 시장 거래 | 82만5천~83만원/톤 (약 615~619달러/톤) | 전주 대비 5천~8천원/톤 하락 |
| 일본산 철근 SD400 D10 수도권 도착도 즉시 현금 | 78만5천원/톤 (약 585달러/톤) | 전주 대비 보합 |
| 중국산 철근 SD400 D10 수도권 도착도 즉시 현금 | 78만원/톤 (약 581달러/톤) | 전주 대비 보합 |
자료: K스틸 2026년 10월 17일 주간동향 모음에 수록된 10월 14일 철근 시장 자료(시장). 달러 환산은 2026년 10월 14일 1달러=1,341.69원(exchange-rates.org) 적용 후 반올림한 참고치다. 국산 공장 출고와 수입재 수도권 도착도 현금가는 거래조건이 달라 직접 비교할 수 없다. 작품 속 인물·업무 상황은 허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