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은 실제 철강시장 자료를 모티프로 창작한 픽션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일부 기업·사건은 허구이며, 실제 기업·단체·사건과 관련이 없다. 실제 기업명은 공개된 시장정보와 가격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범위에서만 사용했다.
견적서가 도착한 아침, 설계사무소의 이현은 창밖보다 먼저 회신 날짜를 살폈다. 오래된 산업단지 물류동의 지붕을 고치는 공사였다. 기둥 몇 개를 보강하고 비가 새는 구간을 손보는 일인데, H형강 발주를 결정하지 못해 뒤따르는 공정도 한 칸씩 밀려 있었다. 고객은 가능하면 이번 달 안에 작업을 끝내기를 원했다.
이현의 화면에는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숫자가 놓여 있었다. 제강사의 소형 H형강 판매가격은 톤당 123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유통업체가 전화로 설명한 국산 실거래 수준은 118만~121만원이었다. 베트남산과 일본산의 유통 기준가격은 더 낮았다. 하지만 이현이 찾는 것은 표에서 가장 작은 숫자만이 아니었다. 도면과 납품서류, 반입 날짜가 한꺼번에 맞는 보였다.
“발주를 늦추면 더 내려갑니까?” 발주처 시설관리자 윤재가 물었다.
“가격이 내려갈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오늘 선택하지 않으면 절단 도면 확정도 늦어집니다.”
“그럼 제강사 가격대로 잡으면 되겠군요.”
“그 숫자는 실제 현장 인도 조건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출고가격인지, 운송과 가공비가 붙었는지부터 나눠 보겠습니다.”
이현은 도면의 보 위치를 한 군데씩 짚었다. 물류동 안에서는 지게차가 계속 오가야 했고, 보수 구간은 한 번에 모두 비울 수 없었다. 몇 개의 철골을 먼저 받아 작업하느냐에 따라 이동 동선과 안전구역이 달라졌다. 똑같은 규격의 형강도 공장 출고일과 현장 도착일이 다르면 공정표에서는 다른 자재가 됐다.
호가와 실거래 사이, 작은 선 하나
한편 외곽의 형강 유통센터에서는 영업담당 태오가 이미 발행한 견적서를 다시 열어 보고 있었다. 그는 제강사 인상 발표 직후 고객에게 120만원대 초반을 설명했다. 그때 시장에서는 122만~123만원 호가도 나왔다. 그런데 실제 거래는 118만~121만원대로 물러섰다. 견적을 보낸 시간과 고객이 결재하는 시간 사이에 시장의 눈높이가 달라진 것이다.
“지난주에 올린 숫자를 오늘도 그대로 쓰겠습니까?” 창고책임자 한결이 물었다.
“그대로 쓰면 주문이 미뤄질 겁니다. 그렇다고 창고에 있는 모든 규격을 같은 값으로 내릴 수도 없습니다.”
“인천 쪽 공장 보수가 시작되면 물량이 타이트해지지 않을까요?”
“보수 일정은 공급 변수입니다. 지금 우리 창고에 쌓인 규격이 오늘 팔린다는 보장은 아니죠.”
태오는 재고표에 색을 칠하는 대신 숫자 옆에 세 가지 말을 적었다. 곧바로 상차할 수 있는 것, 가공을 거쳐야 하는 것, 납기 확인이 필요한 것. 재고 총량이 충분해도 고객의 절단 길이와 승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출고 가능한 물량은 달라진다. 인상 전 매입한 재고와 인상 후 받아야 할 물량의 원가도 동일하지 않았다.
제강사의 의지는 분명했다. 소형 123만원, 대형 136만원으로 판매가격을 올리고 일부 형강 설비의 보수를 예고했다. 그러나 수요가 따라오지 않으면 고시와 시장이 만나는 지점은 늦게 찾아온다. 가을에 철골 작업이 늘 수 있다는 관행만으로 이번 공사의 추가 발주를 증명할 수는 없었다. 특히 중소형 건축현장의 구매력은 여전히 약했다.
한결은 대형 규격을 보관하는 구역을 돌아왔다. 곧 들어올 새 물량을 생각하면 기존 재고를 빨리 돌리고 싶었다. 반대로 너무 낮은 가격을 받아 버리면 다음 매입단가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 태오는 창고에서 가장 먼저 움직여야 할 것이 형강이 아니라 거래조건이라고 생각했다. 납기 약속과 결제 약속을 분리해 적지 않으면 가격을 맞춰도 이익이 남는지 알 수 없었다.
철골 시공팀의 시간은 할인되지 않는다
점심 무렵 철골 시공팀장 도겸이 설계사무소에 들어왔다. 그는 도면보다 작업구간의 사진을 먼저 꺼냈다. 물류동이 가동되는 동안 공사를 해야 하므로 한 번에 많은 철골을 반입하면 오히려 하역구역을 막는다고 했다. 작업자와 장비의 대기시간은 형강 단가가 몇 만원 달라지는 문제와 별도로 계산해야 했다.
“제일 싼 자재를 기다릴 여유가 있습니까?” 이현이 물었다.
“자재만 늦으면 다른 작업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구역을 잡아 놓은 뒤 납품이 밀리면 현장이 통째로 서게 됩니다.”
“수입 형강도 같은 도면으로 가공할 수 있습니까?” 윤재가 끼어들었다.
“가능 여부는 물건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규격, 품질서류, 가공 승인, 반입 시점이 모두 맞는지 확인하지 않고 같은 자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현은 일본산 104만원, 베트남산 112만원이라는 유통 기준선을 메모했다. 국산과의 가격차는 발주처에게 분명한 질문을 던졌다. 그 차이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왜 국내산을 써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값이 비싼 자재가 더 안전하다는 식의 답변을 피했다. 어떤 생산국이든 현장 설계조건과 고객 승인기준을 충족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도겸은 하역 동선 위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었다. 외곽 야적장에 더 오래 보관하는 방법도 있고, 여러 차례 나눠 현장에 들이는 방법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운송과 상차 횟수, 현장 관리 부담이 달라진다. 제강사 호가와 유통센터의 즉시 상차 가능가격이 같아 보이지 않는 이유였다.
“몇 다발을 한 번에 넣으면 운송비가 줄어듭니다.” 태오가 전화로 말했다.
“그 다발이 작업공간을 차지하면 우리는 장비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도겸이 답했다.
“그럼 공정별로 필요한 형강 목록을 다시 보내 주세요. 오늘 확약할 물량과 나중에 확인할 물량을 나누겠습니다.”
“확약 날짜는 실제 차량과 가공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적어 주세요. 달력의 빈칸을 약속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말에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발주처는 가격을, 유통업체는 재고회전을, 시공팀은 설치 일정을 우선했다. 네 사람의 이해가 처음부터 같을 수는 없었다. 다만 어느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 먼저 공개하면 하나의 가격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필요는 없었다.
지나치게 큰 주문서가 접힌 이유
오후에는 태오가 새 견적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그는 국산 현물, 수입재 후보, 가공 대기분을 한 표에 섞지 않았다. 승인 가능한 재고와 확인이 필요한 재고를 따로 놓았다. 수입재가 더 싸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해당 현장에 맞는 품목이 반입될 수 있다는 결론까지 보증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량을 지금 계약하면 단가를 더 낮출 수 있습니까?” 윤재가 물었다.
“물량에 따라 협상 여지는 있지만, 바로 확정할 수 없는 부분까지 묶으면 계약 위험이 커집니다.” 태오가 답했다.
“그 위험을 피하면 얼마나 비싸집니까?”
“그 차이는 배차와 가공비를 따로 산출해야 합니다. 없는 숫자를 지금 답할 수는 없습니다.”
설계 도면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구간까지 선발주하면 수정이 생겼을 때 자재가 남을 수 있었다. 반대로 확정된 구간마저 계속 기다리면 공정 지연 가능성이 커졌다. 이현은 발주를 둘로 나눴다. 승인과 현장동선이 이미 확인된 보강 구간은 먼저 납기와 검수 조건을 확정하고, 설계 검토가 남은 구간은 별도 견적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 판단에는 비용이 있었다. 큰 주문 한 장을 나누면서 일부 운송과 상차가 추가될 수 있고, 할인 폭도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사용하지 못할 자재를 미리 들이는 비용과 장비 대기 위험을 함께 따지면 비교의 결과는 달라졌다. 태오도 한꺼번에 매출을 크게 올리는 기회를 내려놓았다. 대신 창고에서 실제 출하 가능한 재고를 줄이고 받을 돈의 기일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한결은 태오에게 전화를 걸어 새 주문을 확인했다. 수량은 처음 기대보다 작았지만 규격과 납기가 명확했다. 태오는 그동안 가장 오래 머물러 있던 재고 일부가 이번 거래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곧바로 채권한도를 다시 검토하고 회수계획을 적었다. 출고할 수 있다는 사실과 대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른 문장이었다.
“가격이 다시 오르면 오늘 결정이 틀린 것이 됩니까?” 한결이 물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반등을 맞히려는 게 아니라 확정된 주문을 지키는 중입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럼 나머지 재고는요?”
“보수 일정과 실제 거래량을 더 보겠습니다. 120만원선이 버티는지, 118만원대 거래가 넓어지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쉽게 결론 내리지 않겠습니다.”
그날 저녁 이현은 수정된 공정표의 빈칸을 모두 채우지 않았다. 차량 배차를 확인한 자재에는 날짜를 쓰고, 승인과 검수가 남은 물량에는 판단 기준만 적었다. 예측을 사실처럼 적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공팀은 첫 보강 구간에 필요한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고, 발주처는 가격의 이유를 납기와 품질, 운송 조건으로 나눠 볼 수 있게 됐다.
H형강 시장에는 여전히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제강사는 설비보수와 인상정책을 통해 가격을 방어하려 했고, 유통시장은 118만~121만원의 실제 성약으로 수요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베트남산과 일본산의 낮은 유통가격은 국산 상승폭을 억누르는 비교 기준이었다. 어느 쪽 숫자가 다음 주에 우위를 차지할지는 재고 감소, 실거래량, 수입재 소진, 현장 발주가 함께 말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불을 끈 사람은 도면 앞의 이현이었다. 형강은 내일도 비슷한 모습으로 창고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건물의 보가 될지는 가격표 하나가 결정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 비어 있는 구간에 억지로 날짜를 적지 않았다. 그 빈칸을 남겨 두는 일이야말로 이번에는 약속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날의 가격
| 품목 | 가격 | 주간 변동 |
|---|---|---|
| 국산 H형강 유통 실거래 | 118만~121만원/metric ton (약 US$799~820/short ton) | 인상 직후 호가에서 후퇴 |
| 국산 소형 H형강 제강사 판매가격 | 123만원/metric ton (약 US$833/short ton) | 10월 인상 가격 |
| 국산 대형 H형강 제강사 판매가격 | 136만원/metric ton (약 US$921/short ton) | 10월 인상 가격 |
| 베트남산 H형강 유통 기준 | 112만원/metric ton (약 US$759/short ton) | 원자료상 별도 미제시 |
| 일본산 H형강 유통 기준 | 104만원/metric ton (약 US$705/short ton) | 원자료상 별도 미제시 |
자료: 시장, K스틸 2026년 10월 10일 주간시장해설(조사 10월 6~8일). 가격은 소형·대형, 국내·수입, 고시·유통의 거래단계와 규격에 따라 직접 비교가 어렵다. 달러 가격은 참고치로 원자료의 2026년 10월 7일 환율 1달러=1,338.94원, 1 metric ton=1.10231 short ton을 적용해 단순 환산했다. 10월 16일 당일 신규 확정 시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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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설명 — 제강사의 소형 H형강 판매가격이 톤당 123만원으로 올라갔지만 유통 실거래는 118만~121만원으로 후퇴했다. 형강을 구매하는 건설 발주처, 설계자, 시공팀, 유통업체의 서로 다른 계산을 따라가며 가격보다 납기·가공·승인·현금흐름이 중요한 이유를 그린 산업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