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 7월 16일 브리티시스틸 공공 소유 전환
스컨소프 고로 유지로 철강 자급·국가안보·일자리 보호
수입쿼터 51% 축소와 25억파운드 투자 병행…‘영국산 우선’ 강화

철강은 평상시에는 하나의 산업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국가의 기반이 된다. 영국 정부가 브리티시스틸을 국유화한 배경에도 수익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급망과 안보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7월 16일 브리티시스틸을 공공 소유로 전환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스컨소프 제철소의 철강 생산을 유지하는 것이 영국의 국내 생산능력과 주요 공급망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부실기업 구제보다 영국 철강산업을 전략산업으로 다시 규정한 조치에 가깝다. 건설과 교통, 에너지, 국방, 대형 인프라 사업에 필요한 철강을 해외 조달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정책 판단이 반영됐다.
의회 입법 하루 만에 공공 소유로 전환
영국 의회가 7월 15일 ‘철강산업 국유화법’에 대한 국왕 재가 절차를 마치면서 정부가 브리티시스틸을 인수할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산업부 장관이 같은 날 관련 규정에 서명했고, 7월 16일부터 공공 소유 전환의 효력이 발생했다.
영국 정부는 브리티시스틸의 전 소유주인 중국 징예그룹과 장기간 협의했지만, 회사의 장기 존속과 납세자 부담을 함께 고려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민간 소유 상태에서의 지원보다 정부가 직접 지배권을 확보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 구분 | 주요 내용 |
|---|---|
| 국유화법 국왕 재가 | 2026년 7월 15일 |
| 공공 소유 전환 | 2026년 7월 16일 |
| 정부 개입 시작 | 2025년 4월 |
| 핵심 생산거점 | 스컨소프 제철소 |
| 영국 철강산업 직접고용 | 약 3만3,000명 |
| 철강 공급망 고용 | 약 3만6,000명 |
| 철강산업 지원계획 | 최대 25억파운드 |
| 영국산 철강 사용 목표 | 영국 철강 수요의 최대 50% |
| 무관세 수입쿼터 조정 | 전체 물량 51% 축소 |
| 포트탤벗 전환 지원 | 5억파운드 |
정부는 별도의 독립평가기관을 지정해 이전 소유주에게 지급할 보상금이 있는지를 판단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보상 절차를 담은 규정은 올해 가을 마련할 계획이다. 따라서 국유화에 따른 최종 재정부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스컨소프 고로 폐쇄 막은 정부 개입의 연장선
브리티시스틸 국유화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결정이 아니다. 영국 정부는 2025년 4월부터 스컨소프 제철소의 고로가 가동을 중단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직접 개입해 왔다.
고로가 폐쇄될 경우 다시 가동하는 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구 폐쇄로 이어질 수 있다. 스컨소프 생산기반이 사라지면 영국은 일부 핵심 철강재와 일관제철 생산능력을 해외 공급망에 더욱 의존해야 한다.
영국 정부가 문제를 기업 한 곳의 손익이 아닌 국가 생산능력의 존속 문제로 본 이유다. 특히 방위산업과 철도, 에너지 인프라에서 사용하는 철강의 안정적인 조달은 가격 경쟁력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브리티시스틸이 영국 산업 역량의 한 축이라며 이번 결정이 숙련 일자리와 국가적으로 중요한 철강 생산능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첫 과제는 생산 안정…장기적으로 저탄소 경쟁력 확보
새 경영진의 당면 과제는 현장 운영을 안정시키고 생산 중단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비상임이사 중심의 새로운 리더십을 구성해 안전관리와 생산 유지, 노사 협의, 재무구조 안정에 우선적으로 나서도록 했다.
그러나 공공 소유 전환만으로 브리티시스틸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 철강산업은 높은 에너지 비용과 글로벌 공급과잉, 저가 수입재와의 경쟁, 저탄소 설비 전환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다.
정부도 국유화를 영구적인 종착점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공공 소유 아래 회사를 먼저 안정시킨 뒤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한 저탄소 철강사로 전환하고, 필요하면 민간 부문의 투자 참여 가능성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고로를 살리는 것과 기업을 흑자로 돌리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제”라며 “정부 조달과 에너지 비용 지원, 저탄소 설비 투자까지 연결되지 않으면 공공 소유만으로 경쟁력을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국유화·수입규제·공공조달이 하나의 정책으로 연결
이번 국유화는 영국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첫 국가 철강전략과 맞물려 있다. 정부는 철강산업에 최대 25억파운드를 투입하고, 영국에서 소비되는 철강 가운데 자국산 비중을 최대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수입 방어조치도 함께 강화했다. 영국은 무관세로 반입할 수 있는 철강 수입쿼터의 전체 물량을 51% 줄였다. 타타스틸의 포트탤벗 저탄소 철강 전환에는 5억파운드를 지원하고,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전력비 부담을 낮추는 지원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결국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국유화를 통해 생산기반을 유지하고, 수입쿼터를 축소해 국내 시장을 방어하며, 공공 인프라와 국방·에너지 사업에서 영국산 철강의 구매 비중을 확대하는 구조다.
노동계도 국유화를 환영하면서 후속 과제로 공공 인프라 사업의 영국산 철강 구매를 요구했다. 이는 브리티시스틸의 생산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수요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철강업계, 영국향 수출 여건 변화 주시해야
한국 철강업계에는 영국 시장의 보호무역 장벽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변수다. 무관세 수입쿼터 축소에 이어 공공조달에서 영국산 우선 원칙이 강화되면, 한국산 철강재가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갖추더라도 시장 접근성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범용 제품은 수입쿼터와 국내 생산 보호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을 수 있다. 반면 브리티시스틸이 당장 생산하기 어려운 고부가가치 강종이나 특정 규격, 저탄소 인증 철강재에는 보완적인 수입 수요가 남을 수 있다.
국내 철강사와 무역상은 영국 전체 수요만 볼 것이 아니라 브리티시스틸의 생산품목과 신규 투자 방향, 공공조달의 원산지 기준, 품목별 수입쿼터 변화를 함께 살펴야 한다. 영국 정부가 국내 생산 확대 목표를 실제 발주 조건에 반영하는지가 향후 수출 여건을 좌우할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유럽 철강정책에도 적지 않은 신호를 준다. 철강산업의 적자가 장기화하더라도 고로와 핵심 생산설비를 국가안보 자산으로 판단하면 정부가 직접 소유권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관건은 영국 정부가 공공 소유 기업을 단순히 연명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에너지 비용과 설비 전환, 안정적인 수요 확보라는 세 가지 난제를 풀 수 있느냐다. 브리티시스틸 국유화의 성패는 국가가 철강 생산능력을 지키는 것과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철강사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다른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