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06일 (화)
누적 방문자 204,376
일일 방문자 1,745
~

강철의 계절 55화 — 구매팀장은 연휴 뒤 첫 주문을 미뤘다

연휴 뒤 철근 매입 결정을 앞둔 철강 유통 실무자들이 금속 샘플과 서류를 놓고 논의하는 회화적 에디토리얼 장면
이 작품은 실제 철강시장 자료를 모티프로 창작한 픽션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일부 기업·사건은 허구이며, 실제 기업·단체·사건과 관련이 없다. 실제 기업명은 공개된 시장정보와 가격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범위에서만 사용했다.


연휴가 끝난 첫 월요일, 수도권의 한 철강 유통사 사무실에는 평소보다 늦게 전화벨이 울렸다. 구매팀장 한재민은 출근하자마자 재고표를 펼쳤지만, 숫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비어 있는 발주 칸이었다. 연휴 전까지 현장들이 발주를 줄였고 유통업체들도 가격 방향을 확인하느라 재고 확보를 미뤘다. 국산 철근 유통가격은 SD400 10mm 기준 톤당 84만~85만원. 전주와 비교해 크게 움직이지 않았지만, 한재민이 신경 쓰는 것은 가격표의 정지보다 그 아래 숨어 있는 거래량의 침묵이었다.


영업팀장 최성호가 서류철을 들고 들어왔다.

“오늘 오전 물량부터 다시 잡아야 합니다. 연휴 전에 미룬 현장이 세 군데예요.”

한재민은 재고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현장은 필요한 만큼 바로 가져가겠답니까, 아니면 시세부터 보겠답니까?”

“둘 다입니다. 급한 물량은 필요하지만, 월 물량을 한꺼번에 확정하려는 곳은 없습니다.”


한재민은 그 대답이 오히려 익숙했다. 제강사들은 유통향 공급을 조절하면서 가격 방어에 나섰고, 시장에는 톤당 89만원의 고시가격이 제시돼 있었다. 그러나 유통시세와의 간격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공급을 줄이면 가격이 버틸 수는 있어도, 수요가 따라오지 않으면 거래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세 번의 추석 뒤를 기억하는 사람

한재민은 책상 서랍에서 오래된 수첩을 꺼냈다. 그는 명절 뒤 첫 주문을 결정할 때마다 과거의 가격 흐름을 적어둔 페이지를 다시 보는 습관이 있었다. 2023년에는 추석 직전 톤당 86만원이던 국산 철근이 두 주 동안 버틴 뒤 세 주째 85만원으로 내려갔다. 2024년에는 추석 직전 80만5,000원이던 가격이 한 주 뒤 79만5,000원, 네 주 뒤에는 74만5,000원까지 낮아졌다. 2025년에도 추석 직후 70만원을 지켰지만 두 주 뒤 69만원, 세 주 뒤 67만원으로 밀렸다.


최성호가 수첩을 보며 말했다. “지난해도 버틴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거래가 약해지면서 내려왔죠.”

“그래서 올해도 무조건 내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재민이 답했다. “제강사 공급 조절은 예년보다 강하고, 가격을 지키려는 의지도 분명합니다. 다만 우리가 먼저 한 달 물량을 채워 넣을 이유도 아직 없습니다.”


재고·물류를 맡은 박지수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연휴 전 마지막 출하 이후 하치장별 잔량을 다시 맞춰본 참이었다.

“그럼 이번 주 매입은 얼마나 잡습니까?”


한재민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철근은 재고가 없으면 영업을 할 수 없는 품목이지만, 가격이 불안한 시기에 많이 들여놓으면 재고가 곧 손실이 된다. 공급 제한이 이어지는 동안 재고가 너무 얇아지면 반대로 급한 주문을 놓칠 수 있다. 그 사이에서 구매팀의 판단은 늘 가격 전망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크기로 결정됐다.


“한 번에 월 물량을 채우지 맙시다. 확정된 현장 물량과 규격만 먼저 삽니다.”

박지수가 곧바로 계산했다. “나눠 받으면 운송비가 올라갑니다. 하치장별로 차를 따로 붙여야 할 수도 있어요.”

“그 비용은 인정합시다. 대신 가격이 한 번 흔들렸을 때 큰 재고를 떠안는 비용은 줄일 수 있습니다.”


그때 자금 담당 김영은이 회의실 끝에서 말을 보탰다. 연휴 전 매출 회수 일정과 새 매입 결제일이 겹치는 시기라, 구매량을 늘리면 가격 위험뿐 아니라 현금 흐름도 함께 무거워질 수 있었다.


“매입을 쪼개면 단가 조건은 조금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대신 현금이 재고에 먼저 묶이는 속도는 늦출 수 있어요.”

최성호가 반문했다. “가격이 오르면 결국 더 비싸게 사는 것 아닙니까?”

김영은은 서류를 덮었다. “오를 때 더 비싸게 사는 위험과, 안 팔릴 때 높은 재고를 오래 들고 가는 위험은 다릅니다. 지금은 둘 중 어느 쪽이 큰지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ADVERTISEMENT

한재민은 그 말을 수첩 여백에 적었다. 과거의 가격표가 알려주는 것은 미래 가격이 아니었다. 명절 직후 며칠간은 가격이 버티더라도, 실수요와 유통 판매가 따라오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며 약세로 기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올해처럼 공급 조절이 강하면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과거를 예언서가 아니라 손실의 범위를 가늠하는 자로 사용했다.


가격보다 먼저 확인할 것

오전 열 시가 조금 넘어 제강사 영업담당 서민석의 전화가 왔다. 공급 물량을 조절하는 기조는 이어지고 있었고, 유통업계가 연휴 뒤 얼마나 빠르게 주문을 재개하는지 서로 확인하는 시점이었다.


“제강사 쪽 물량은 여유롭다고 보시면 안 됩니다. 필요한 규격이 있으면 미리 잡으시는 게 좋습니다.”

한재민은 창밖 하치장을 바라봤다. “그 가격을 시장이 실제로 받아들이는지는 이번 주 거래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다만 공급도 예전처럼 밀어내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그래서 저희도 안 사는 게 아니라 나눠서 사겠습니다. 이번 주 확정분부터 보내주시죠.”

전화를 끊자 최성호가 한재민을 바라봤다. 영업팀 입장에서는 매입을 늦추는 결정이 늘 불편했다. 고객이 갑자기 물량을 늘리면 대응이 늦어질 수 있고, 규격 하나가 부족해도 납품 전체가 꼬일 수 있었다.

“현장 필요한 물량이 갑자기 늘면요?”


“그때는 비싸게 사더라도 맞춰야죠. 하지만 지금은 수요가 살아났다는 신호가 없습니다. 가격을 맞히려고 하지 말고, 주문이 실제로 돌아오는지부터 봅시다.”

그 말에 박지수가 하치장별 재고를 다시 나눠 적었다. 한 번의 대량 입고 대신 이틀, 사흘 간격의 소량 입고를 가정하자 빈칸이 많아졌다. 물류 효율은 떨어졌지만 현금이 재고로 묶이는 속도는 늦출 수 있었다.


점심 직전, 건설현장 자재담당 이선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휴 전에 미뤄둔 발주를 다시 확인하려는 연락이었다.

“이번 주는 공정이 완전히 정상화된 게 아닙니다. 우선 급한 동만 보내주시면 됩니다.”

최성호가 물었다. “다음 주 물량까지 확정해 두실까요?”


“아직은요. 현장도 인원 복귀와 공정 속도를 봐야 합니다. 중순쯤 다시 잡는 게 낫겠습니다.”

통화를 듣고 있던 한재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기다리던 것은 가격 인상 공문도, 제강사의 추가 조치도 아니었다. 실제 현장에서 다음 주문을 앞당기는 신호였다. 공급을 줄여 가격을 지키는 힘과 수요가 주문을 미루는 힘이 맞서는 동안 유통사는 어느 한쪽만 믿고 움직일 수 없었다.


한 달 물량 대신 사흘치 약속

오후 회의에서 한재민은 결정을 확정했다. 이번 주에는 확정 주문에 필요한 철근만 매입하고, 추가 재고는 거래량이 확인될 때까지 보류하기로 했다. 영업팀은 주요 고객에게 규격별 납기 가능일을 먼저 알리고, 물류팀은 분할 입고에 따른 추가 운송비를 별도 관리하기로 했다. 자금팀은 매입 결제 일정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도록 주문 시점을 나눠 검토했다. 다음 점검 시점은 시장 거래가 본격적으로 재개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10월 중순으로 잡았다.


최성호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결국 이번 주는 가격보다 물량을 본다는 겁니까?”

한재민은 주문서의 빈칸을 접어 수첩 안에 넣었다.

“아니요. 가격을 보기 위해 물량을 보는 겁니다. 거래가 없는 가격은 오래 버티기도 하고, 갑자기 무너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어느 쪽인지 맞히는 게 아니라, 어느 쪽이 와도 버틸 수 있게 사는 겁니다.”


그날 첫 주문은 예상보다 작았다. 큰 할인도 없었고, 운송 효율도 좋지 않았다. 대신 재고 위험은 작아졌다. 연휴 뒤의 시장은 아직 방향을 말해주지 않았지만, 구매팀은 방향이 정해질 때까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만 움직이기로 했다. 철강 유통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가장 비싼 결정을 미리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날의 가격

품목가격주간 변동
국산 철근 유통(SD400, 10mm)84만~85만원/톤보합
제강사 유통향 고시가격89만원/톤원자료상 별도 미제시
ADVERTISEMENT
RECOMMENDED CONTENT
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