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0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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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산책] 마지막 한 톤이 시장을 무너뜨릴 때

초현실적 콜라주풍의 철강 산업 풍경에서 과도한 철강재가 중앙의 공유 공간을 압박하는 장면

철강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숫자는 때로 가격도, 재고도 아니다. ‘한 톤만 더’라는 생각일 수 있다. 공장을 돌리는 회사 입장에서는 가동률을 지키고 고정비를 낮추기 위해 한 톤을 더 생산하는 선택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유통업체 역시 창고를 채워 두면 다음 가격 반등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시장에 참여한 모두가 같은 계산을 할 때 시작된다.


경제학에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있다. 공동 목초지를 쓰는 목동에게 소 한 마리를 더 풀어놓는 이익은 거의 전부 자신의 것이지만, 목초지가 닳는 비용은 여러 사람이 나눠 부담한다. 그래서 각자의 합리적 선택이 반복될수록 공동의 자원은 훼손된다. 철강시장의 공유지는 바로 가격 질서와 수요의 흡수 능력이다.


2026년 가을 글로벌 철강시장이 다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OECD는 2025년 세계 철강 과잉생산능력을 약 6억4,000만 톤으로 추산했고, 2028년에는 7억4,500만 톤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28년까지 계획된 신규 설비는 최대 1억3,880만 톤에 이르는 반면, 세계 철강 수요 증가율은 2030년까지 연평균 약 0.9%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항목수치의미
2025년 세계 철강 과잉생산능력약 6억4,000만 톤이미 OECD 전체 생산량을 크게 웃도는 구조적 공급 압력
2028년 예상 과잉생산능력약 7억4,500만 톤수요보다 설비 확대가 빠른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
2028년까지 계획 신규 설비최대 1억3,880만 톤2025년 설비 수준 대비 약 5.7% 증가
2030년까지 예상 수요 증가율연평균 약 0.9%신규 설비 증가 속도를 흡수하기 어려운 수요 환경


이 숫자들이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모든 제철소가 자사 설비만 보고 ‘조금 더 만들자’고 판단하면, 그 마지막 한 톤이 모여 시장 전체의 가격과 수익성을 훼손한다는 점이다. 생산량이 늘어도 수요가 따라오지 않으면 가격 할인, 재고 증가, 결제조건 완화가 차례로 나타난다. 그 뒤에는 재고평가손실과 금융비용, 여신 위험이 따라온다.


가동률을 지키려다 시장을 잃는 역설

철강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고로와 전기로, 압연설비는 멈추는 것보다 돌리는 편이 원가 계산상 유리해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수요가 둔화돼도 생산량을 쉽게 줄이지 못한다. 그러나 시장 전체에서 같은 행동이 반복되면 톤당 고정비를 줄이려던 선택이 판매가격을 더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기업의 비용 절감이 산업 전체의 마진 훼손으로 되돌아오는 셈이다.


최근 중국 철강업계가 실제 주문과 수익성을 기준으로 생산과 재고를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9월 중순 중국 주요 철강사들은 생산을 줄였지만, 계절적 수요 회복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완제품 재고 부담은 여전히 컸다. 생산 조절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주문과 재고의 변화에 맞춰 지속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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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를 지키는 것은 담합이 아니라 자기 규율이다

여기서 생산 조절을 곧바로 가격 유지나 업체 간 담합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시장 경쟁은 유지돼야 한다. 핵심은 각 회사가 실제 주문, 재고회전, 제품별 마진,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생산과 판매를 결정하는 자기 규율이다. 수요가 약한데도 톤수 목표만을 지키기 위해 물량을 밀어내는 방식과는 다르다.


9월 30일 미국 밀워키에서 열린 철강 과잉생산능력 글로벌포럼(GFSEC) 장관회의가 ‘밀워키 프레임워크’를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잉설비의 원인과 시장 왜곡을 개별 국가의 문제로만 두지 않고, 데이터와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며 공동 대응의 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철강시장의 공유지는 한 회사나 한 나라가 혼자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철강업계가 먼저 바꿔야 할 숫자

한국 철강사와 유통업체에도 이 문제는 멀리 있지 않다. 영업은 판매톤수, 생산은 가동률, 구매는 매입단가, 재무는 현금만 본다면 각 부서는 자기 목표를 달성해도 회사 전체는 손실을 볼 수 있다. 철강 비즈니스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모두가 자기 숫자만 맞았다고 말할 때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얼마나 더 팔 수 있는가’보다 ‘어떤 물량을 팔아야 현금과 마진이 남는가’를 묻는 경영이다. 출하가 늘어도 외상기간이 길어지고 재고회전일수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성장보다 위험에 가깝다. 가격을 낮춰 잡은 주문이 원가와 금융비용을 보상하지 못한다면 매출은 커져도 기업가치는 줄어든다.


공유지의 비극에서 목초지를 살리는 방법은 소를 모두 없애는 것이 아니다. 초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철강도 마찬가지다. 설비를 멈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생산과 판매의 속도를 읽자는 것이다. 수요가 약한 시대의 경쟁력은 많이 만드는 능력보다 멈춰야 할 때를 아는 능력에서 갈릴 수 있다.


자료: OECD Steel Outlook 2026, GFSEC 2026 Ministerial Meeting, S&P Global 2026년 9월 25일 공개자료 / 철강정보원 재구성·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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